
노먼 세일러는 아내의 화장방을 엿보는 인간이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한 것이다.
(본문 7쪽, 첫 대목)
밝은 세상을 지탱하는 가려진 그들의 세계
처음 ‘아내가 마법을 쓴다’는 제목을 들으며 연상한 것은 옛날 ‘토요명화’에서 보았던 <내 사랑 지니>였다. 평범한 인간(<해리 포터>식으로 말하면 ‘머글’) 남자와 요술쟁이인 아내가 겪는 이러저러한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그린 코미디였는데, 최근에 니콜 키드먼이 주연한 코믹 영화 <그녀는 요술쟁이 Bewitched>의 스토리와 합쳐져 혹시 이 영화들의 원작 고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실제로 프리츠 라이버의 이 책은 세 번이나 영화화가 되었다고 하니 앞의 두 영화가 그에 포함되는지도 모르겠다.

영화(들)와 책의 가장 큰 차이점은 마법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영화에서는 단순한 ‘판타지’로서의 요술에 머물며 요술을 부리는 아내나 현실에서 요술이 어떤 식으로 발현하는지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책에서는 어떤 마법을 쓰는지가 아니라 이성과 논리가 지배하는 현실과 초자연적인 힘이 지배하는 현실의 이면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을 아주 세밀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다.
주술이란 불합리하고 그릇된 행동지침이며 자연법칙에 관한 의사(擬似) 체계라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주술은 미성숙한 기술이며, 거짓된 의사 과학에 불과하다. (……) 한마디로 미개인에게 주술이란 언제나 하나의 기술이었을 따름이며 결코 과학이 아니었다. (제임스 프레이저, <황금 가지>, 을유문화사, 상권 71쪽)
남편인 노먼은 대학에서 민속학과 인류학을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 원시주술이나 미신을 부정하며 언제나 이성과 과학에 따라 움직이는 인물이자 근대화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어느 날 그는 사랑하는 아내의 방에서 마법과 주술의 흔적을 발견하고 당황한다. 그가 보기에 아내는 주술을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려고 했다고 믿는다.
사라와크의 반팅 지방 시다야크족 여자들은 남자들이 먼 곳에서 싸우고 있는 동안 복잡한 규칙들을 준수해야 한다. (……) 예컨대 여자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해가 뜨자마자 창문을 열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출정 중인 남편이 늦잠을 자게 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또한 여자들은 얼굴을 가리고 있으면 안 된다. 그랬다가는 남편이 숲이나 밀림에서 길을 읽게 될 거라고 믿었다. 게다가 여자들은 바늘로 옷을 꿰매서도 안 된다. 그랬다가는 적이 길목에 장치한 날카로운 못에 남편이 찔리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위에서 인용한 책, 91쪽)
그 뒤로 평탄하던 노먼의 삶을 흔드는 일들이 하나둘씩 생긴다. 급기야는 미신이라고 치부하던 주술의 세계에 자신의 몸을 던지지 않으면 안 될 일까지 생기고 마는데……. 그는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에 부딪히며 현실과 초자연의 경계에서 혼란에 빠진다. 그의 고민과 이성적인 당혹감은 ‘인간은 오류에 입각하여 오류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며, 사람들에게 진리를 납득시키고자 할 때 진리를 증명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오류로부터 진리에 이르는 길을 발견해야 한다’[footnote]을유문화사 판 <황금 가지> 역주에서 재인용[/footnote]고 했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고민과도 연관되어 있다. 이런 노먼의 불안과 공포를 극복하는 과정은 이 소설의 백미다. 단순히 사건이 벌어지고 갈등을 타개하는 데서 벗어나, 자신이 갖고 있던 믿음을 버리지 못하고 지키려고 안간힘을 다하는 모습은 당시 사회상을 투영하고 있다.

송경아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팬덤스토리 시리즈 제1권
‘아내가 마법을 쓴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작품 안에서 중요한 사회적 역할을 하는 사람은 남자 교수들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들의 역할을 지탱하고 보호하는 사람은 여자인 ‘아내’라는 것, 또 하나는 남자 교수들이 상징하는 이성과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마법’이라는 것.
요컨대 주술의 공적 행사는 가장 유능한 사람들에게 절대 권력을 장악하게 해 준 수단 중의 하나였다. 그럼으로써 인류를 전통의 속박에서 해방시켜, 세계에 대한 보다 폭넓은 시야를 마련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보다 크고 자유로운 삶으로 끌어올리는 데에 기여했던 것이다. 나아가 인간성의 형성에 공헌한 바도 결코 적지 않았다. (……) 설령 사악한 흑주술 같은 것이 많은 악을 저질렀더라도, 동시에 주술이 선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설령 주술이 오류의 산물일지라도, 동시에 자유와 진리의 산모가 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위에서 인용한 책, 138쪽)
프리츠 라이버는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 가지>를 무릎에 두고 이 책을 쓴 것 같다. 그중에서도 ‘공감 주술’에 해당하는 장(章)과는 평행선을 이루며 나란히 놓여 있다. 특히나 ‘공감 주술’ 장의 마지막 문단은 이 책의 큰 줄거리와 주제를 일정 부분 대신하고 있기까지 하다. 프레이저는 주술을 과학이 아닌 미신으로 격하시키긴 하였으나 주술의 사회적 역할이나 공헌을 잊지는 않았다. 주인공 노먼은 결국 자신의 현실적 믿음과 초자연적 진실 사이에서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하고 경계에 머무른다. 그것은 그 시대가 갖고 있는 공통적인 고민이었을 것이다. 한쪽에서 다른 한쪽으로 이전하는 과도기의 모습이다.
몇 번이고 되풀이되어 이제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야기이지만 <아내가 마법을 쓴다>는 다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몇십 년이나 지났는데도 작품이 가지고 있는 소재는 낡지 않았으며, 읽는 내내 긴장감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작가의 필력 또한 걸출하다. 영화에서 선입견을 얻어 ‘요술을 부리는 아내’에게만 집중할 독자들이 있다면, 남편인 노먼의 고민과 혼란스러움에 조금 더 집중해 보라. 줄거리를 넘어서는 색다른 책의 가치를 발견할 것이 틀림없다. -虎-
■ <기획회의>에 실었던 글을 다듬고 정리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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