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물고기>는, 팀 버튼 감독의 [빅 피쉬]의 원작이다. [빅 피쉬]는 시사회 때 제대로 봤으면 좋았을 것을, 자리가 너무나 열악하여 극장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온 비운의 영화. -_- 그래서 아직 영화는 보지 못했다.
책을 전부 읽고 든 생각은 역시, 이 책을 어떻게 형상화했을까하는 팀 버튼에 대한 기대. 시사회를 본 지인에게 "황당하지만 괜찮은" 영화라는 평을 들은 터라 더 궁금해졌다. 책은 유쾌하고 재밌었지만 읽는 도중에 폭 공감할 정도는 아니었다. 사실 이야기가 산만하고 들쭉날쭉하여 토막토막의 이야기를 즐기지 못한다면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종잡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지도. 처음 느낌은 그랬다.
많은 이야기들에서 주인공은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아버지를 찾는 과정은, 아버지가 누구인가하는 의문은,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기 위한 자물쇠며 열쇠다. 아버지는 괴물이기도 하고 영웅이기도 하며 또 주인공 자신이다.
<큰 물고기>에서는 주인공이 아버지를 찾아가는 대신 아버지인 에드워드 블룸이 아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과연 어떤 존재인지. 신화나 전설에서처럼 일정한 궤도를 그리지는 않지만 여정 자체는 비슷하다. 헤라클레스의 열 두 위업을 연상케하는 세 가지 위업이라든지, 호수나 연못에 등장하는 여인들은 그를 돕는 사이렌이나 요정을 닮았으며 케르베로스를 닮은 개나 시적인 사랑도 포함되어 있다.
그는 웃고 있지 않았다. 웃기려고 하는 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아무런 꾸밈 없는 본연의 그였다. 가면 하나를 벗기면 또 하나의 가면이 있고 그리고 또 가면, 또 하나 더―그 아래 어둡고 아픈 곳, 그 자신도 나도 이해 못 하는 그의 삶이 있었다. (p.175)
캠벨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이자 "가면을 쓴 신"이다. <큰 물고기>에서 들려주는 에피소드들은 각각 아버지의 가면을 하나씩 펼쳐 보이는 역할을 한다. 가면을 벗겨나갈수록 아들은 아버지를 알아간다. <큰 물고기>는 영웅의 탄생과 죽음의 여행이며, 또한 그의 '변신 이야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에드워드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영웅담보다는 허풍처럼 들린다. 익살과 유머는 아버지로서의 에드워드 블룸을 특징짓는 키워드인데, 그는 뮌히하우젠 남작을 떠올리는 입담(천 가지 가면)으로 아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 지점이 이 소설을 특별하게 만든다.
현실과 환상, 진실과 허풍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에드워드의 이야기와 이야기를 통해 아버지라는 존재를 잡으려는 아들의 노력이 균형을 이루며 독특한 글쓰기를 경험하게 한다. 팬터지가 아니면서 팬터지의 상상력을 포함하고, 그 안에서 신화의 여정을 좇는다. 유머스러운 허풍 속에서도 서정성을 잃지 않는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다.
책을 읽는 재미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단순히, 허풍스런 아버지의 환상적인 이야기와 그 안에 담긴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이라고 정의내릴 수도 있겠지만(그렇게 읽을 수도 있자) 그러면 너무 싱거워진다. 그저 가볍게 웃으며 지나치면 그 밑에 내재한 크고작은 의미들을 음미하지 못하기 쉽다.
이렇게 글을 풀어나갈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영화가 궁금해졌다. 이야기의 줄기는 공유하더라도 팀 버튼의 영화는 조금 색깔을 띠리라 예상한다. 그의 상상력은 훨씬 더 시각적이니까. 영화로 보는 <큰 물고기>는 어떤 느낌일까? -虎-
(read or trash?
★★★★)
☞ 포스트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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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노인을 바라보았다. 생이 저물어가고 있는 시간에 늙고 하얀 발을 흐르는 맑은 물에 담그고 있는 나의 늙은 아버지. 나는 불현듯 그리고 아주 단순하게, 한때 소년이었던, 어린애였던, 그리고 젊은 청년이었던 나의 아버지를 생각해보았다. 내 청춘과 마찬가지로 아버지도 한때 청년이었던 것을, 나는 한 번도 아버지를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아버지의 현재와 과거―은 모두 하나로 합쳐졌다. 그러자 순간, 아버지는 젊으면서도 늙은, 죽어가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새로 태어나고 있는 아주 기괴한 존재로 변했다.
나의 아버지는 하나의 신화가 되었다.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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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왠지 아버지가 신과 같다고 생각했다. 웃음의 신, 입만 열면 ‘옛날에 이런 사람이 있었단다’로 시작하는 신, 아니면 적어도 사람들이 좀더 웃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온 신과 어떤 인간 여자 사이에 태어난 혼혈 신이라고 생각했다.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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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올 때마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큰 나를 발견했고 그걸 볼 때마다 자신은 얼마나 작아지는지 깨달았다. 아닌게 아니라 그건 사실이었다. 내가 자라남에 따라 아버지는 줄어들었다. 이런 논리라면 언젠가 나는 거인이 될 것이고 에드워드 블룸은 너무나 작아져서 이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될 것이었다. (pp.188~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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