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읽기
난 별로 결과를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 같진 않다. 내가 하는 일은 늘 '재밌을 것 같아서'거나 '어쩐지 마음에 들어서'라든지 '그냥 해보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그렇기 때문에 궁극적으로 뭔가 결과를 낳게 하는 힘은 그다지 존재하지 않았다. 집중력을 발휘하여 단기간에 끝내버리지 않으면 아주 오랜기간(옆에서 보면 끝이 별로 보이지 않는)을 두고 느긋하게 일부림하는, 즉 눈에 보이는 곳에 결과를 두고 그것을 통해 힘을 발휘하는 체질은 아니었던 게다. 뭔가 '결과'라는 것이 보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단지 '어쩌다 보니'. 지금도 그렇고.
뭔가,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참 기분좋은 일이겠지만 나로선 그 때까지를 '즐기는' 일에 더 관심하기 때문이지 싶다. 결과보다 과정이 더 중요하지,라는 재미없는 얘길 하는 건 아니다. 결과는 과정만큼 중요하다. 뭘 하든 이기는 편이 더 재밌으니까.(한국이 아무리 경기를 잘 했더라도 16강에서 떨어지거나 했으면 꽤 재미없었을 거다)
난 하지만 결과를 생각하면서 움직이는 인간은 아니다. 다시 이야기하면, 결과를 위한 '투지'가 과정을 움직이는 인간은 아니라는 말이다. 결과나 목적이 아무런 상관없을 수야 있겠냐만, 순간순간의 과정이 재미없다면, 이미 결과는 내게서 의미없어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의 투쟁이 아무런 성과가 없으리란 걸 당신이 알고 있다고 해도, 당신의 삶은 천박하고 무미건조해지지 않아요. 하리, 당신이 어떤 훌륭한 이상을 위해 싸우고, 그것을 반드시 이루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훨씬 더 천박해요. 도대체 이상이란 것은 이루어지기 위해 존재하는 건가요? 도대체 우리 인간은 죽음을 없애기 위해 사는 건가요? 아니에요.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런 다음 다시 죽음을 사랑하기 위해 사는 거예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보잘것없는 인생도 어느 순간 그렇게 아름답게 불타오르는 거예요. 당신은 어린애예요, 하리"(<황야의 이리>, 헤르만 헤세, 민음사, p.168)
나는 나를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엔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감동을 느끼지 못하면 관심할 수 없다. 재미도 없다. 나는 끊임없이 변화하길 바라고 그 변화들을 내 또다른 변화의 바탕으로 삼는다. 벽 밖의 황야는 오로지 아름다운 배경일 뿐. 나는 아름다움을 감상하기보다 아름답길 원한다.
아스텍 력으로 생일을 꼽아 내게 부여된 이름은 11-미퀴스틀리. 미퀴스틀리(Miquiztli)는 '죽음', 신화에서 죽음이 그렇듯, 재생과 변화를 상징한다. 이 날의 수호자는 밤의 지배자인 테스카틀리포카와 동일시되는 달의 신 메츠틀리다.
변화는 불안하다. 그래서 망설이게 된다. 무언가 약속받은 것이 없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황야인데도 의존하고 싶은 마음이 변화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행동의 결과나 뭐 그런 걸 생각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지도 않았을 테니까.
"내 의식이 제대로 된 의식인지, 아니면 엉터리 의식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존재가 제대로 된 존재인지, 아니면 엉터리 존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어떤 일에 천복을 느끼는지 그것은 안다. 그래. 이 천복을 물고늘어지자. 이 천복이 내 존재와 의식을 데리고 다닐 것이다.'(<신화의 힘>, 조지프 캠벨, 고려원, p.234)
언제나 이것 아니었던가. Huh? -虎-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