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허설과 독자교정

리드맨 블루스 | 2008/11/25 14:22 | 호야

근할 때는 주로 라디오 클래식 채널에 고정하고 음악을 듣는다. 덜 깬 정신에 노랫말이 들어간 음악보다는 클래식이 마음을 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뭔가 다른 것에 집중할 때도 클래식 음악을 종종 배경 음악으로 틀어놓곤 하지만 뭔가 알고 듣는다기보다 그저 음악이 주는 편안함 때문에 듣는지라 작곡가나 지휘자, 연주가나 장르(?)에 대해서는 무지하다.

라디오는 그런 점에서 ‘지식’을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특별히 귀 기울여 듣지는 않지만 반복되어 나오는 말들이나 평소에 궁금했던 점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쫑긋거린다. 그러다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지휘자 사이먼 래틀과 함께 한국을 찾았는데, 소외층 청소년들에게 리허설을 무료로 공개한다는 것. 한국에서 오케스트라의 리허설 공개는 드문 일이라 초청받은 청소년들은 아주 좋은 경험이 될 것이라는 말이었다. 들은 바에 따르면 오케스트라의 최종 리허설은 거의 본 무대와 같은 연주를 들을 수 있지만 정장을 갖춰 입지 않은 연주자의 모습이나 음악이 끝나는 중간중간 의논하는 마지막 준비 모습 등 특별한 재미까지 있다고.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우리 출판사의 ‘독자교정’을 떠올렸다. 출간 직전의 최종 원고를 읽을 수 있다는 점이나, 표지를 두르지 않은 날 원고를 그대로 볼 수 있다는 점, 편집자와 직접 만나 이런저런 의견 이야기하거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은 오케스트라의 최종 리허설과 꼭 닮아 있었다. 오케스트라에도 이런 것이 있다니, 창립 이후로 줄곧 독자교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왠지 뿌듯하다.



지난주에는 게스트로 장한나가 나왔다. 온갖 칭찬을 받는 그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는데(첼로 연주를 좋아함에도), D. H. 로렌스 읽은 얘기를 듣고는 호감도 급상승. 무슨 이야기였냐면, 자기는 로렌스를 읽고 결혼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충격을 받았다, 그런 로렌스의 매력은 같은 어휘를 교묘하게 반복하는 데 있는데, 예를 들어 ‘호수 위에 밝게 떠 있는 달이 비쳐든 맑은 호수에는……’처럼(정확하진 않지만 아무튼 이런 인용이었다) 읽다 보면 리듬을 느낄 수 있다고. 다른 책들은 줄거리를 쫓아 뒤로뒤로 내달리게 되기 쉬운데 로렌스의 경우에는 그래서 몇 번이고 같은 페이지를 반복해서 읽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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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가 읽고 싶어졌다. 저렇게 읽을 수 있는 장한나의 감수성에 반했다. 그의 연주를 듣고 싶어졌다. 그는 물론 원서를 읽었겠지만, 우리말로 번역된 책으로 그런 리듬을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아들과 연인』을 주문했다. 그의 음반 하나그가 즐겨 듣는다는 쇼팽의 녹턴을 함께 주문했다.

결혼하지 않겠다고 생각할 만큼 충격을 받았다는 말에 조금 부럽기도 했다. 내가 그런 충격을 마지막으로 받았던 게 언제더라..... 머리에 총을 맞은 것 같은 충격을. 적어도 최근은 아니다. 재밌고 즐거운 독서는 했지만 그저 그뿐.


앞선 주문에는 이미 카라얀의 ‘교향곡 에디션’이 담겨 있었다. 클래식에 관한 내 취향은 종잡을 수 없었기에 어떤 작곡가든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다. 이번 이 음반은 어쩌면 기회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카라얀이라지 않는가(뭐가 훌륭한지는 아직 제대로 알지 못하지만). 클래식 채널을 통해 흘러나온 사이먼 래틀의 ‘베를리오즈, 환상 교향곡’이 방아쇠였지 싶다. 처음으로 ‘아름다운 연주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주로 첼로나 바이올린, 피아노와 같은 단독 악기 연주나 협주곡 정도에 만족했다면 비로소 교향곡의 맛을 알았다고나 할까. 카라얀의 음반을 첫 번째 장부터 차례대로 듣고 있다. 우선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들어볼 참이다. 세 번째 장을 듣고 있다. 베토벤이다. 내가 생각하던 베토벤과 다르다. 좋다. 2008년이 지나기 전에 서른여덟 장을 모두 들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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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클래식은 내적이다. 내가 클래식을 즐겨 듣는다면 그것이 주된 이유다. 가요나 팝은 다 함께 즐거워하며 바깥으로 무언가를 내뿜는 음악이지만 클래식은 안으로 깊숙하게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그래서 나에게 클래식은 "같이" 들을 수 없는 음악이다. 비슷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지언정 혼자만의 내적 경험을 어찌 공유할 수 있다는 말인가. 언제 기회가 된다면 오케스트라의 공개 리허설에 가보고 싶다. 나는 아직 한 번도 클래식 연주를 들으러 가본 일이 없다. -虎-

2008/11/25 14:22 2008/11/25 14:22

그저께 정말 식겁한 일이 있었다. 갑자기 알라딘에서 로그인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처음에는 시스템 점검이나 업데이트 과정의 오류거니 했다. 등록된 이메일 계정을 찾을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시간이 흘러도 접근이 되지 않아 주민번호로 아이디 찾기를 했는데도 그런 회원이 없단다. 안 되겠다 싶어 고객센터로 전화를 했다.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얼마 전, 사용하지 않은 사이트를 정리한답시고 사이트 일괄 탈퇴 서비스를 이용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알라딘이 섞여 들었나 보다. 요청에 의해 회원 정보가 모두 삭제되었다는 말이었다. 복구가 안 되냐고 물었다. 안 된다고 했다. 처리 중인 주문은 살아 있고, 새로 가입하시면 쌓여 있던 적립금은 다시 넣어 주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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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비현실적인 얘기라 사실 통화를 하는 와중에는 사태를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야 머릿속이 새하얘지면서 어떻게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간 알라딘에서 구매한 책이 얼만큼인데 그 기록이 모두 사라진다는 말인가. 걸려 있는 주문이나 멤버십보다 왠지 그게 가장 충격적이었다. 안 될 리 없다. 서버 하드를 로우 레벨 포맷한 것도 아닐 텐데 그새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데이터가 사라졌을 리는 없다.

일단, 새로 같은 이메일 주소로 가입을 하고 온라인 1:1 고객 상담에 사정을 남겼다. 포기할 즈음, 다행히 복구를 해주겠다는 메일을 받았다. 구매 기록과 멤버십도 살아나고, 보관함의 책들도 다시 나타났다. ttb 서비스에는 새로 등록해야 했지만(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알라딘 고객센터 만세!!!

알라딘이 다른 인터넷서점과 비교하여 더 나은 점이 있다면 으뜸은 고객센터일 것이다. 콘텐츠의 질과 양은 평균화된 지 오래고, 독자서평 등에서 약간의 차별점이 보이긴 하지만 고객센터만큼은 다른 곳과 비교될 정도로 만족스럽다. 딱히 계정을 복구해 줘서가 아니라 말이지.

다시 '나의계정'에 접속하니 왠지 뭉클하여 지난 구매 기록을 훑어봤다. 저......정말 많이도 샀구나...... 진짜 집 한 채 장만할 금액 나오겠는데;;;; 첫 주문은 1999년 7월 14일 알라딘 오픈 첫날 구매한 고종석과 에코의 책 외 2권이다. 두 번째 주문에는 『영원의 아이』가 있다. 내가 그때 이런 책들을 읽었구나 생각하니 재밌기도 하고 구매 기록이 더욱 소중하게 여겨진다. 구매 기록은 곧 내 독서 편력의 역사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니 말이다. 내년이면 10년이구나. 내년에는 『영원의 아이』를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 내놓는다. 세월이 무상하다. -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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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0 11:02 2008/11/20 11:02

고 청탁을 하나 받았습니다. 일본 미스터리 기획 기사인데, 각론으로 7대 작가(라고는 하지만 한국에 많이 소개된)에 대한 평을 싣나 봅니다. 전 당연히 미야베 여사님을 고르고 싶었지만 이미 다른 필자가 섭외되어 있었고 고를 수 있는 건 히가시노 게이고요코미조 세이시요코야마 히데오뿐이었죠. (칫) 최근 읽은 『이누가미 일족』이 조금 재밌었지만 그놈의 긴다이치 고스케는 좋아할 수 없는 탐정인지라 제외, 안 그래도 밀린 책이 있어 읽으려는 참인지라 잘됐다 싶어 히가시노 게이고를 선택했습니다.

집에 구석구석 박힌 책을 다시 끄집어내고, 미처 구입하지 못했던 작품들을 신간과 함께 주문했습니다. 그렇게 책상 한편에 쌓고 보니 생각보다 훨씬 책이 많더라고요. 몇 권은 빠진 상태인데도요. 서른 작품에 가까운 양이 너무 단기간에 나온 탓인지 일부 독자들은 벌써 질린 모양이에요(그를 비롯하여 온다 리쿠니 미야베 미유키도 같은 신세). 하지만 저는 책을 보며 뿌듯했답니다. 겨우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달랑 『백야행』 한 작품밖에 번역되지 않은 걸 생각하면 감개무량할 지경이에요.

새로운 작가를 아는 즐거움도 즐거움이지만 한 작가에 대해 깊이 있게 접근하는 즐거움도 제법 크거든요. 서너 권쯤 읽으면 그 작가가 대충 어떤지 다 알 것 같고, 그다음에는 별다른 재미를 못 느낄 거라 생각하기 쉽지만 말이에요. 비슷한 작품 사이에 느껴지는 세밀한 차이라든지, 시간이 흐르면서 바뀌는 스타일이라든지 반대로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무언가를 찾는 기쁨. 게다가 한 작가를 꾸준히 읽다 보면 어느 순간 그때까지는 전혀 깨닫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들을 발견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저는 기쁘더라고요. 언제 이렇게 한 작가를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나 싶어서 말이죠. 작가를 대표작으로밖에 이해할 수 없었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백야행』 한 작품의 히가시노 게이고와 서른 작품의 히가시노 게이고는 제게 전혀 다른 작가예요. 마찬가지로, 제가 『화차』를 읽고(정확하게는 『인생을 훔친 여자』지만요) 받았던 감동은 그 뒤로 다른 수많은 미야베 여사의 작품을 읽었을 때의 감동과 또 달랐어요. 한 작품 한 작품의 감동도 다르고, 그 작품들이 하나씩 쌓여 갈 때마다 느끼는 '총체적인 감동'도 다르죠. 때때로 처음 읽었을 때의 감흥과 작가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읽었을 때의 감흥이 전혀 다르기도 합니다. 한 번 읽었다고 해서, 줄거리와 결말을 알았다고 해서, 반드시 전부를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그래서 저는 기쁩니다. 한 작가의 작품이 꾸준히 소개된다는 이야기는 독자에게 그만큼 작가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말이니까요. 그 사람의 책을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는 말이니까요. 비록, 한국 출판 시장이 일본 미스터리 붐에 편승하여 인기 작가에 매달린 결과물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는 축복이겠지요. 이 축복이 오래 지속되기를, 나아가 몇몇 작가에 편중되지 않고 더 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작품들을 읽을 수 있기를, 돌탑에 비는 마음으로 쌓인 책을 바라보았습니다. 이번에 읽을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떤 작가일까요? -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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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19 10:29 2008/11/19 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