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쇼 한 명의 문제

“원래 하이카이는 시정잡배의 심심풀이에 지나지 않았는데, 마쓰오 바쇼라는 천재가 등장하면서 예술로 승화되었어요. 「바쇼 한 명의 문제」에는 탐정소설계에도 그런 바쇼가 한 명 나타나면 탐정소설이 1급 문학이 되는 날이, 예술이 되는 날이 오리라는 내용이 적혀 있죠. 그 글을 처음 읽었을 때는 감정이 북받쳤어요. 란포는 뛰어난 탐정소설을 읽으면 ‘탐정소설의 혼’이 머리를 쑥 쳐든다고 했죠. 그리고 그러한 ‘혼’에 빙의된 란포가 쓴 평론이나 수필을 읽으면 이쪽까지 탐정소설의 혼에 씐 듯한 상태에 빠져요.”

— 『기관 – 호러 작가가 사는 집』(미쓰다 신조, 김은모 옮김, 한스미디어)

탐정은 무녀가 되어 신의 목소리로 말한다.

아리스가와 아리스의 『주홍색 연구』에는 재밌는 대목이 나온다. 한 인물이 추리소설에서 사람이 살해당하는 이유를 묻는다. 권선징악을 주제로 하는 탐정 이야기라면 굳이 살인이 아니더라도 상관이 없을 텐데 말이다.

작가 아리스는 화자 아리스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데, 그 부분이 재밌다. 제법 긴 분량인데다 소설의 이야기 맥락 안에서 듣는 편이 더 재밌으니까 전체 인용은 생략하지만 그 장면에서 특히나 마음에 들었던 대사는 이것. (앞뒤 맥락 없이 들으면 뜬금없는 말로 들릴 테지만)

“탐정은 무녀가 되어 신의 목소리로 말하고, 상징적으로 세상에 의미를 부여하는 거로군요.”

— 본문 212쪽

철학적인 동시에 감상적인 아리스의 대답은 모든 사람이 수긍할 만큼 객관적이지는 않지만 꽤 마음이 끌리는 설명이다. 작품 자체도 그간의 작가 아리스 시리즈와는 조금 다른데, 히무라의 유별난 개성이 덜 드러난 반면 아리스의 존재감이 부각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와 각자의 사정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이 많아졌다. 본격 미스터리를 한껏 기대했다면 조금 실망할지도 모르지만, 그런 이유로 이만한 변화는 만족스러웠다. 다른 읽을 거리가 많았으니까.

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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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한국 창작 미스터리 단평

한국 창작 미스터리는 2011년에도 제법 많이 출간되었지만 모두 아쉬움만 남겼다. 재밌기로 따지면 김종일의 『삼악도』(황금가지)가 가장 나았지만 작가의 역량을 생각한다면 이야기 구성이 안일했다. 어쨌거나 현 시점에서 가장 잘 읽히는 작가라는 사실은 틀림없지만. 나름 주목을 받았던 손선영의 『합작』(손안의책)과 하반기 출간된 후속작 『죽어야 사는 남자』(청어람)는 요소요소들이 잘 갖춰진 작품이라 생각하지만 잘 읽히지 않는 문제는 여전하다.

가장 아쉬운 것은 『경성탐정록』(한동진, 북홀릭, 2009)의 후속작 『피의 굴레』(북홀릭)다. 경성이라는 매력적인 공간과 시대를 배경으로 독창적인 인물을 구상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은 전작의 서평에서 이미 토로했거니와, 단편의 길이가 다소 늘어나서인지는 몰라도 이야기가 지루해졌다. 전작에서 보여 주었던 트릭의 참신함도 잘 드러나지 않는 터라 재미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지속적으로 한국 미스터리가 출간되는 점은 반가운 일이나, 잠깐의 붐처럼 타올랐다가 그마저 사그라질 형편이니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다. 그 탓은 상당 부분 출판사에 있다. 시장의 반응에 편승해서 소개하는 데만 그쳤을 뿐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제대로 된 중간자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창작 미스터리는 독자와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더 이상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다. 훌륭한 작가와 인기 작품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는 않는다. 처음부터 대단한 작가는 없다. 잘 팔릴 원고를 찾을 게 아니라 출판사(편집자/기획자)와 작가의 지속적인 피드백으로 독자에게 다가가야 할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고민중이다.

虎.

2011년 미스터리 결산

늦었지만 아무튼. 사무실에서 각자의 2011 미스터리 ‘My Best’를 뽑았는데, 겸사로. 순위에 올린 작품 대부분이 크게 주목받지 못한 것 같아 많이 아쉽다. 2011년에는 이렇다 할 ‘물건’이 없어서 그게 전반적으로도 영향을 준 듯. 『백설공주에게 죽음을』(넬레 노이하우스, 김진아 옮김, 북로드)이 돌풍을 몰고 온 듯 보이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보이기 때문에 뭐라 말할 수 없다.

아래 순위의 순서는 상관없고, 당연히 읽지 않은 책은 포함시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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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정소설의 사명

탐정소설은 일찍이 유행했던 다양한 종류의 문학 속에서 진화해 태어난, 보다 새롭고, 보다 심오하고, 통렬한 문학이다. 일체의 예술의 전통 정신과 형식에서 이탈하여, 인간의 심리를 보다 깊이 파헤치고, 분석하고, 극약화하고, 독약화하고, 나아가 원자화하고, 전자화하기 위한 예술계의 이단아였다. 예술의 신을 모독함을 전문으로 하는 반역 예술이었다.

과거의 예술은 겉치장을 예찬하는 데에만 몰두했다. 그것이 진화해 그 겉치장을 벗겨낸 육체미의 감상을 주류로 하는 중세 예술로까지 진화했다. 그것이 현대…… 즉 탐정소설 시대에 들어와서는 더욱 진화하여, 그 육체를 갈기갈기 찢고 폐부를 끄집어내고, 해골을 토막내, 혈액에서 분뇨까지 분석하고, 현미경으로 검사하여 그 기괴하고 추악한 아름다움을 폭로하고 전율하려 하는 것이다.

탐정소설의 사명은 거기서 탄생했다. 탐정소설의 진정한 사명은 이에 있다. ……갖가지 허영과 허식에 우쭐대는 공리 도덕과 과학 문화의 장엄…… 눈부시게 찬란한 과학 문화의 외관을 찢어발겨, 그 밑바닥에 위축뒤어 꿈틀거리는 작은 인간성……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초미세 현미경적인 양심을 절대적인 공포, 전율을 느낄 정도로 폭로하는 그 통쾌함, 심각함, 처절함을 마음껏 맛보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대중적인 읽을 거리여야만 한다.

— 유메노 규사쿠, 『소녀 지옥』(최고은 옮김, 디앤씨미디어) 옮긴이 후기에서 인용한 「고가 사부로 씨에 답함」 중에서.

2012년의 출사표로 삼아도 좋겠다. 호훗. 더불어 어제 트윗에서 들은 쓰쓰이 야스타카의 다음 말과 함께.

“문학이란 사람을 훌륭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문학은 사람의 마음을 상스럽게 만들거나 살인자를 만들 수 있는 독을 가지고 있다. 독이기 때문에 굉장한 것이다. 이 세상에 없는 ‘독’을 만들어 낼 수 있기에 문학이다. 그래서 내 작품 때문에 살인자가 생겼다는 사실을 영광스러워하지는 않지만 숨기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文学というのは人の心を立派にするようなものではなくて、人の心を下品にしたり、殺人者を生んだりする毒である。毒であるからこそ素晴らしいのだ。この世の中にはない「毒」がつくれるからこその文学である。 だから俺は「俺の作品で人殺しが出た」ということを誇りにはしないが、隠そうとも思わない。)

— 쓰쓰이 야스타카 (번역은 H군의 도움을 받았다. 원문 출처는 여기 )

쓰쓰이 야스타카를 읽고 고등학생이 할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있었는데 당시 쓰쓰이 야스타카는 언론에 꽤 공격를 받았다고 한다. 그때 ”문학이란 그런 것이다”라며 당당하게 대답했다고.

 

버린 욕망과 아껴둔 시간이…

“재미있어져. 돈은 모으면 늘어나고, 밥은 안 먹으면 체중이 줄지. 그리고 버린 욕망과 아껴둔 시간이 눈에 보이는 형태가 되어서 남는 거야. 그렇게 되면 그 뒤로는 돈이나 체중의 노예가 되지. 인생의 보람이 없으면, 예금 통장이나 체중계의 숫자에 쉽게 점령당하는 거야.”

— 아즈마 나오미, 『탐정은 바에 있다』(현정수 옮김, 포레)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현미경이나 망원경은 쓰려고 하지도 않고, 당연히 시야의 저편에 있는 것에는 관심도 없다.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들의 행복이나 보람이 한 가지로 통일되어 간다는 것. 누군가 그랬지. 몸은 묶어 둘 수 있어도 마음까지 묶어 둘 수는 없다고. 이제 그 사람은 그 말을 취소해야 할 거다. 이제 정신과 마음까지 빼앗기고 있으니까.

 

물만두, 『물만두의 추리 책방』

물만두 님은 서평가나 평론가가 아니지만, 그의 글에는 전문 서평이나 평론에서 찾기 힘든, 추리소설에 대한 깊은 애정과 따뜻한 시선이 있다. 그의 서평을 읽으면, 그가 읽은 책을 읽고 그가 느꼈던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어진다. 서평이 말을 건넨다. “같이 읽지 않겠어요?”라고. 그의 부재가 독자들에게 아쉬움을 주는 까닭은 많은 책을 읽고 많은 서평을 남겼기 때문이 아니다. 즐길 책들은 여전히 나오고 있는데 그는 더 이상 말을 걸어 주지 않기 때문이다.

에 추천사가 실렸다(문구는 조금 바뀌었지만). 이 책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이게 전부다. 나는 책이 밝고 가벼운 느낌을 주었으면 하고 바랐기 때문에 책을 받아 들고 조금 아쉬웠지만, 그렇다고 싫은 건 아니다. 책이 꽤 묵직하다.

H.

물만두의 추리 책방

왜 하필 신화입니까?

“왜 하필이면 신화입니까? 왜 우리가 신화에 관심해야 하는 것입니까? 도대체 신화가 우리 삶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그래요, 우리 몫의 삶을 살면 되는 겁니다.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니까요. 그렇게 살면 신화 같은 것은 필요하지 않아요.」 이게 나의 첫 번째 대답입니다.”

— 빌 모이어스+조지프 캠벨, 『신화의 힘』

내 20대를 점령했던 질문, 그리고 대답. 나는 아직 새로운 질문을 발견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