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 범죄의 창문 너머 – 딕슨 카, <유다의 창>

존 딕슨 카, <유다의 창>, 로크미디어, 2010

존 딕슨 카의 작품 성격을 익히 안다면 ‘유다의 창’이라는 제목에서 예수를 찌른 배신의 창, 즉 ‘롱기누스의 창’ 같은 물건을 연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존 딕슨 카의 <유다의 창>에서 말하는 ‘창’은 ‘창(槍)’ 아니라 ‘창문(窓門)’이다. 영어에서 Judas Window는 문에 자그맣게 달려 안이나 밖을 살필 수 있는 창을 가리킨다. 죄수들을 들여다보기 위해 간수들이 사용하는 감옥문에 달린 덮개 달린 작은 창을 떠올리면 정확하다.

시작은 이렇다. “보통 사람들보다 조금 더 부자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구석이 없는 평범한 젊은이” 지미앤스웰은 어여쁜 아가씨 메리 흄을 파티에서 만나 열렬히 사랑에 빠지고 곧바로 결혼 약속까지 한다. 예비 장인 에이버리 흄에게 초대를 받아 집을 방문한 앤스웰은 술을 받아 마신 뒤 정신을 잃고 마는데, 깨어 보니 흄은 가슴에 화살을 맞아 죽은 채 쓰러져 있다. 안쪽에서 잠긴 단단한 문, 강철 셔터까지 내려진 창, 밀실에서 깨어난 앤스웰은 살인죄로 법정에 서게 된다.

“아니네, 이 친구야. 내가 자네에게 한 말은 그냥 그게 사실이라는 거지. 그 문은 진짜로 꽉 짜 맞춰진 튼튼한 문이고 잠겨 있었네. 창문 역시 꽉 맞춰진 채 잠겨 있었고. 잠그는 것이든 여는 것이든 그 누구도 장난치지 않은 상태였어. 그리고 건축가가 벽에 틈새나 구멍이 없다고 한 걸 들었겠지? 그것도 사실이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진짜 살인범은 유다의 창을 통해 드나들었다는 것!” (본문 76~77쪽)

여전히 딕슨 카는 견고한 밀실을 마련하고 독자들에게 도전장을 내민다. 열쇠는 ‘유다의 창’. 법정에서 공방이 진행됨에따라 단서는 하나둘씩 늘어나지만 언제나 그렇듯 해결은 쉽지 않다. 진짜 시작은 여기서부터다. <유다의 창>은 형사나 탐정이 등장해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잡는 평범한 방식이 아닌, 주요 용의자의 무죄를 밝히는 과정을 주요 줄거리로 삼고 있다.

강렬한 트릭과 몸을 오싹하게 만드는 공포감은 딕슨 카를 읽는 재미의 주요 요소이고 그것이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 주기도 하지만, 반면 그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작위적인 트릭과 다소 부자연스러운 사건 해결 방식이 약점으로 지목받기도 한다. <유다의 창>은 카가 그런 약점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추리소설의 대가로 우뚝 설 수 있었는지 증명하는 걸작이다.

빅토리아 시대의 감옥문에 달린 '유다의 창' (출처: 플리커)

<유다의 창>은 독자가 생각해내기 힘든 복잡다단한 트릭이나 예상치 못한 범인, 깜짝 놀랄 반전으로 뭉친 퀴즈 미스터리가 아니다. 소설 중간중간 미끼처럼 등장하는 ‘유다의 창’의 정체이자 트릭의 비밀이란 오히려 시시하게 느껴진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이 작품의 목적은 범인 체포가 아니라 피고의 무죄 증명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이야기의 ‘플롯’. 카의 작품을 통틀어 가장 정밀하고 가장 세심하게 짜인 플롯은 파격적인 트릭이나 반전을 넘어 재미의 질을 높이고 있다.

무대는 법정. 검사를 상대로 하여 피고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증거들을 물리치고 무죄를 증명해야 하는 변호사 헨리 메리베일 경이 우리의 주인공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법정에서의 진술과 진술에 따른 검사와 변호사의 공방을 통해 진행되며 그러면서 사건의 진상, 진짜로 사건 당시 벌어졌던 일들이 밝혀지기 시작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술을 토대로 사건을 완성해가는 재미는, 모든 것을 숨기고 있다가 마지막에 가서야 짠 하고 터뜨리는 명탐정이 등장하는 추리소설의 재미와는 사뭇 다르다. 메리베일 경과 상대를 벌이는 검사 또한 단순히 주인공의 활약을 돋보이게 만드는 보조가 아니라 함께 플롯을 완성시키는 대등한 인물로 그려져 법정 미스터리로서의 매력을 함께 상승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별것 아닌 일들이 어떻게 끔찍하도록 진지한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아니면 자네 인생에서 일어난 중요한 일들이 누군가의 선의나 악의, 혹은 어쨌든 누군가의 어떠한 노력으로 인해 방향을 틀어 버린 적이 있나? …..종종 범죄에 있어서는 운명이라는 것이 작용하기도 하지.” (본문 204쪽)

<구부러진 경첩> 등에서 활약하고 있는 명탐정 기드온 펠 박사에 비해 메리베일 경은 한국 독자들에게는 크게 알려져 있지 않은데, 딕슨 카의 작품을 통들어 보면 펠 박사와 거의 동등한 활약을 하고 있는 인물 가운데 한 명이다.

메리베일 경은 “약간 꼬여 있는” 사건을 좋아한다. 한 사람의 머리 좋은 범죄자가 구상하여 벌어진 사건이 아니라 운명에 의해 조금씩 비틀리고 엉켜버려 의도한 형태를 갖추지 못한 사건을 말한다. 어떻게 보면 이런 사건이야말로 불가능 범죄에 가까울 것이다. 한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트릭이라면 아무리 정교하다고 하더라도 범죄자를 중심으로 하는 한 가지 시선을 좇으면 되지만, 우연의 요소가 결합되어 여러 사람의 의지가 얽히고 만다면 각각의 시선을 모두 밝혀야만 진실을 깨달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어느 방에나 있지만 그걸 깨닫는 사람은 적은 ‘유다의 창’은 그런 진실을 들여다보는 창문을 의미하기도 한다. 알아차리기만 한다면 누구나 창을 통해 들여다볼 수 있지만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법정 미스터리인 동시에 본격 미스터리이기도 한 <유다의 창>은 사건에 도전하여 트릭을 해결하고 범인을 알아맞히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게는 다소 싱거울지 몰라도, 트릭을 위한 작위적인 논리가 아닌 이야기의 상황 설정과 정밀한 이야기 구성을 위한 논리를 맛보고 싶어하는 독자라면 <황제의 코담배케이스>만큼이나 최상급의 즐거움을 안겨줄 미스터리다.

-虎-

※ <기획회의> 267호에 실린 글을 다듬고 수정하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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