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의 『매구를 죽이려고』

『매구를 죽이려고』 는 (출판사를 통해)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로 소개되고 있지만 일반적인 미스터리 장르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이야기가 꽤 진행되기 전까지 당황할지 모르겠다.

조선희의 『매구를 죽이려고』

천 년 묵은 이무기가 용이 되듯, 천 년 묵은 여우가 결국 도달하게 되는 존재가 매구다. 적어도 작은 시골 마을 매구면 남바리 주민들은 그렇게 믿고 있다. 사람들은 또 말한다. 마을에는 매구호수가 있는데, 누가 여기에 빠지면 매구가 구해준단다. 단, 조건이 있다. 누군다 다른 사람이 구하려 들지 말아야 한다. 다른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고 하면 그 사람은 그대로 빠져 죽는다. 누군가와 함께 매구호수에 갔다가 사고를 당한다면 함께 있는 사람은 크다큰 딜레마를 겪을 수밖에 없다. 전설 같은 소문을 믿자니 소문 때문에 사람 죽어가는데도 구경만 하고 있었다는 비난을 받을지 모르고, 구하려 든다면 그대로 뒀으면 매구가 구해줬을 텐데 죽이고 말았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

매구호수에 꼭 그런 일이 벌어졌다. 한 소녀가 빠져 죽었다. 소녀를 구하려 호수에 뛰어든 사람이 있었지만 결국 소녀를 구하지 못했다. 소녀의 죽음은 자살로 처리되고, 매구의 전설을 따르지 않은 사람은 마을 사람들에게 비난과 지탄을 받았다. 그렇게 12년이 지나고, 마을을 떠났던 한 남자가 아들을 데리고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말끔하게 해결되지 않은 채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만으로 떠돌던 12년 전 사건이 다시 불거져 수면 위로 떠오른다.

『매구를 죽이려고』 는 ‘매구’의 정체를 둘러싼 이야기다. 사람들은 매구의 존재를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부정하지도 못하고 살아간다. 12년 전에도 그랬고, 현재도 그렇다. 12년간은 이렇다 할 사건이 없었기에 그저 ‘소문’이라는 애매한 형태로 남아 있을 수 있었으나 다시 매구호수에 얽혀 사람들이 죽기 시작하면서 사실적 실체보다 설화적 허구의 형상이 좀더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그 중심에 선 것은 대책 없는 아버지와 함께 어렸을 적 기억밖에 없는 마을에서 살게 된 윤이하. 이하 또한 매구호수에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아주 어릴 적 자신이 호수에 빠졌을 때 함께 있던 아버지가 구해줄 생각 없이 바라만 보고 있던 기억이 또렷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잘못된 기억이라며 이야기를 피하지만 매구에 대한 소문과 그에 얽힌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을수록, 대체 매구의 정체가 무엇인지 12년 전 사건의 진상과 자신의 어릴 적 기억의 진실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이 커진다.

『매구를 죽이려고』 는 (출판사를 통해) ‘미스터리 추리 스릴러’로 소개되고 있지만 일반적인 미스터리 장르를 기대하고 읽는다면 이야기가 꽤 진행되기 전까지 당황할지 모르겠다. 위의 설정이라면 사실 매구는 그저 전설일 뿐, 사람이 저지를 범죄(살인)에 사람들의 과장된 소문이 덧씌워져 잘못 전해지고 있다는 김전일식의 전개가 펼쳐져야 마땅할(?)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설의 중반부에 이르기까지 매구의 존재가 잠식하고 있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 매구 같은 건 믿지도 않았던(그래서 아버지를 더 원망했던) 이하(및 독자) 또한 기괴한 현상을 겪으며 ‘뭔가 있다’고 믿을 수밖에 없는, 미스터리나 추리와는 다소 동떨어진 상황만 지속적으로 펼쳐지기 때문이다.

중반부를 넘어서며 마을의 구성원과 관계가 어느 정도 드러날 무렵부터는 감춰져 있던 사실과 퍼즐 조각이 밝혀지며 어느 정도 미스터리의 구조에 가까워지긴 한다. 결국 이 작품은 세 가지 질문을 품고 있다. 첫 번째는 12년 전 벌어진 매구 호수 사건의 진상은 무엇인가. 두 번째는 현재 벌어진 (살인) 사건의 범인과 진상은 무엇인가. 세 번째는 주인공 이하가 겪은 어릴 적 기억의 진상은 무엇인가. 세 가지 질문은 모두 ‘매구’를 품고 있으며, 궁극적으로는 매구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밝히는 이야기다.

진상이 밝혀지는 과정과 실체는 (호오가 갈릴지언정) 흥미롭긴 하지만, 이 작품은 미스터리로서의 재미보다는 설화적 이야기로서의 재미가 더 큰 작품이다. 앞에서 작가 또는 등장인물들이 제시한 정보와 실마리를 바탕으로 꽉 짜여진 사실을 완성하는 미스터리 소설의 재미보다, 작가가 구성한 세계가 어떠한 구성원에 의해 어떤 규칙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명확한 설명이 아닌 모호한 서술을 즐기며 따라가는 설화적 서사의 재미가 훨씬 크다는 의미다. 그래서 대체 매구(범인)의 정체는 무엇(누구)인지 알아맞히기 위해 작가를 상대로 열심히 두뇌 싸움을 벌이기보다 작가가 차려둔 세계관에 들어가 그 세계의 의미를 곱씹어보는 편이 이 책을 읽는 나은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