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의 '베스트셀러 따라잡기' 코너에 히가시노 게이고 "쏠림" 현상을 두고 기사(정양환 기자)가 실렸다. 기사의 요지는 <용의자 X의 헌신>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우후죽순처럼 작품들이 소개되었다는 얘기 같은데, "추리소설 편식에 씁쓸"하다면서 글 내용은 맥락도 없고, 대체 뭘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없다. 작품 소개 순서가 뒤죽박죽이라느니 하다가 갑자기 음식 얘기를 하면서 뜬금없이 편식을 고치자는 얘기로 끝낸다.
이 기사를 비평할 생각은 없다. 비평할 내용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심심하면 장르 소설에 딴지를 거는 기자들의 소양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가끔씩 신문에 소개되는 장르 소설들이 보도자료 중심의 겉핧기가 되거나 위의 기사처럼 맥락 없는 글이 되는 이유는 단 한 가지다. 장르 소설이란 기자들의 관심 범위 바깥이기 때문이다. 관심이 없으니 읽지도 않고, 읽지 않으니 모른다.
'일상'과 '삶'에 집착하는 많은 한국 "순수 문학"과 달리, 장르 소설은 추상적인 이야기로 얼버무릴 수 없다. 미스터리든 SF든 판타지든 달랑 한 권을 읽어서는 무슨 얘기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기 어렵다. 장르를 통과하는 '코드' 때문이다. "우리 삶의 밑바당에 도사린 치열함을 바깥으로 끄집어 내 유려한 문장으로...."라는 식으로 대충 구라를 치기 힘들다는 말이다. 그러니 작품들이 순서대로 나오지 않았다는 투정을 하지.
관심이 없으니 읽지도 않고, 라고 했지만 기자에게 이 말이 상식적인가? 무릇 기자라면 개인의 취향과 호오에 상관없이 객관적이고 공정한 시선을 가져야 하지 않는가. 바쁘다는 거 안다. 개개인의 취향이 엇갈린다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기자이지 않는가. 가장 처음 책을 받아 보는 독자가 아니던가. 기본적인 평가와 안내의 역할을 맡은 자 아닌가. 시야를 넓혀 다양한 책을 더욱 많이 읽어야 한다. 독자가 되어야 한다. 그럴듯해 보이는 몇 권의 책을 깊이 있게 읽는 독자가 아니라, 자신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는 책이라도 관심을 붙여 끌어당겨 읽는 독자이어야 한다. 그리고 평가해야 한다.
바쁜 와중에도 편집자를 뜨끔하게 만들 정도로 책을 읽고 날카로운 평가를 내리는 기자를 나는 알고 있다. 하지만 저런 식의 무지하고 부당한 기사를 읽다 보면 절망하고 만다. 가끔씩 북섹션 기자에게 전화를 받고는 답답함에 짜증을 낼 때도 있다. 그래도 요즘에는 팬십 넘치는 기자들도 많아서 종종 즐거운 대화가 되기도 한다. 조금쯤은, 변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만 얘기해 줘도 얼마든지 도울 준비가 되어 있는데. -虎-
예스24에서도 같은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겠지만 알라딘 서재에서는 종종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진다. 끊임없이 이슈화되는 일 가운데 하나는 악평의 문제. 몇몇 독자들이 책의 오역 등을 조목조목 짚으면서 출판사와 번역자를 긴장하게 만들어 때로는 명예훼손과 리뷰할 권리 사이에서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리뷰나 페이퍼의 삭제를 둘러싼 갈등까지 빚는다.
출판사나 작가, 번역자의 리뷰 삭제 요청은 제법 많을 것이다. 내가 있을 때만 해도 심심치 않게 메일을 받았으니 규모가 훨씬 커진 지금은 말할 나위 없으리라. 인터넷 서점으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다. 무분별한 비난이나 근거 없는 욕설로 도배된 리뷰라면 적절한 과정을 거쳐 리뷰를 삭제할 수 있지만 일정한 형식을 갖춘 글을 삭제할 권리는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출판사나 작가가 이러한 사정을 이해한다면 다행이되, 그렇지 않다면 대개 욕을 보는 것은 독자이기 쉽다. 글을 삭제하거나 블라인드 처리하는 것이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이니까.
악평은 반드시 나쁘기만 할까? 하나의 악평이 책의 판매에 미치는 영향은 삭제 운운하며 호들갑을 떨 만큼 대단할까? 물론 신간이 나오자마자 악평만 덜렁 붙어 있다면 책에 대한 독자들의 인상은 나쁠 것임은 틀림없다. 많은 책들이 서평단을 모집하고 서평단들은 대개 호의적인 평가를 내놓기 마련이니, 다른 책에 비해 상대적으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다른 책도 다 그런데 하필 왜 우리 책만 가지고 그러냐는 억울함이 울컥 솟구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출판사가 내놓아야 할 반응은 '삭제 조치 요구'가 아니다. 독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서평을 "결정된 평가"라고 여길 게 아니라 다양한 의견 가운데 하나이자 출판사(또는 작가)를 향한 대화라고 생각해야 한다. 독자의 평가가 억울하다면, 출판사는 적극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시도해야 할 일이다. 사실 대부분의 악평은 그대로 두면 절로 존재감을 잃는다. 독자들도 바보는 아니고, 한 사람의 악평만을 곧이곧대로 믿지도 않는다(좋은 말보다는 나쁜 말이 더 귀에 잘 들어오는 법이라 하더라도).
독자로서 악평 때문에 책을 구입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 악평에 설득력 있었기 때문이다. 독자서평의 의미는 그런 게 아닌가. 제대로 된 악평은 때로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특히나 소설에 있어서는, 취향에 따른 호오가 사람마다 분명히 다르지 않는가. 악평의 이유는 책을 읽을 이유가 되기도 한다.
때로 치명적인 서평들도 있긴 하다. 특정한 부분만을 지나치게 강조하여 나쁜 점만을 드러내는 경우, 그것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 책이 아니라 관심 있는 몇몇 독자에게만 의미 있을 때, 서평은 책에게 사형선고를 내리기도 한다. 잘못은 바로 잡아야 하겠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평가를 내려줄 필요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뭐, 그것도 독자에게 바라는 배려지 마땅히 그래야 할 의무는 아니다.
책은 일정의 대가를 치르고 구입하는 상품이다. 독자는 상품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할 권리가 있다. 무작정한 삭제 조치는 콘테이너 바이케이드나 마찬가지다. 악평을 모욕이라 생각하지 않는 일이 어려운가? 대화를 시도하는 일이 그렇게 어려운가? -虎-
한때 책을 되도록 빨리 읽으려고 애쓴 적이 있다. 빨리 읽어야 다음 책을 읽을 수 있으며, 그래야 더 많은 책을 읽을 수 있었으니까. 가만 생각하면 이것은 참 우스운 생각이었는데, 본디 책을 읽고자 하는 목적을 망각하고 단순히 양적 만족감에만 집착한 발상이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 치우"려고 하면 독서는 자연스레 재미없어진다. 재밌는 책은 언제나 지금 읽고 있는 책이 아니라 옆에 쌓여 있는 책이 되고 마니까.
요즘 나는 이런 루틴에 조금 빠져 있는 듯하다. 여름이라 신간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나온다. 책상 옆에는 서평을 쓸 책과 흥미를 가진 책과 업계종사자로 '읽어 줘야 마땅할' 책이 3단으로 쌓여 있다. '어서 이 책 읽고 저 책 읽어야지.' 하는 생각이 의자 밑을 뱅뱅 돈다. 책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다.
많은 책들(장르소설)이 한꺼번에 쏟아져나오는 폐해 가운데 하나라고나 할까. 장르소설이라 부를 만한 책이 그다지 나오지 않았던 10년쯤 전만 해도 책의 형태를 가진 장르소설은 "무엇이든" 재밌었다. 하지만 그 책들이 지금 다시 출간된다고 생각하면 생존율은 글쎄,다. 시장이 반찬이라는데, 양으로만 보면 지금은 음식을 더 많이 먹기 위해 먹은 것을 게우고 다시 먹었다는 로마 귀족과 다를 바 없다. 눈앞에 놓인 음식의 맛에 좀처럼 집중하지 못한다.
꼼꼼히 훑어 읽으면 재미없는 책은 없다. 한 부분 한 부분을 음미하면 MP3 사용설명서도 재미있다. 그렇게 읽지 못하니, 아니, 그렇게 읽질 않으니 재미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고 그저 많은 소설 가운데 하나쯤으로 여기고 만다. 그러다 보니 장점보다 단점이 쉽게 눈에 들어온다. 두꺼운 책보다 얇은 책을, 섬세한 감성보다 즉각적인 자극을 원하게 된다.
나는 책을 되도록 천천히 읽기 시작했다. 이런 다짐은 일이 년에 한 번쯤은 꼭 하게 된다.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어느 순간에는 지나치게 가속도가 붙어 있게 마련이니까. 사실 재밌는 독서의 비법은 첫 부분을 느리게 읽는 데서 시작한다. 이야기의 시작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 있고, 그것을 놓치면 재미도 흥분도 감동도 모두 놓치고 만다.
사실 첫 부분을 느리게 읽는 것이 책을 재밌게, 빨리 읽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첫 부분에서 작가가 만들고 있는 작품의 세계상과 구조를 파악하면 뒷 부분의 이야기들은 쉽게 읽힌다. 문장 읽기가 아니라 문단 읽기도 가능해진다. 작가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면 글이 눈에 들어오지도 않거니와 행간의 의미나 작품의 재미도 반감할 수밖에 없다.
모든 작품은 서로 다른 재미를 갖고 있다. 어느 한 작품의 재미를 다른 작품에서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본격 미스터리에서 영혼의 메시지를 찾거나 판타지에서 세밀한 리얼리티를 구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작품의 재미를 미리 결정 짓지 않는다면, 지금 손에 들고 질질 끌고 있는 소설은 지금부터라도 얼마든지 재밌어질 수 있다. -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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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를 읽었다는 자체가 원죄에요. 스트레스 받지 마시길.
하하하, 원죄라니요. 스트레스를 받는다기보다 전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주고 싶다니까요. 요즘은 한국에 산다는 게 스트레스인데 이까짓 걸로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