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올해의 미스터리 - 해외편

1. 요네자와 호노부, 『겨울철 한정 봉봉 쇼콜라 사건』
2. 히가시노 게이고, 『가공범』
3. 마야 유타카, 『신 게임』
4. 가지 다쓰오, 『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
5. M. W. 크레이븐, 『블랙 서머』
6. 다켄, 『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7. 미쓰다 신조, 『하에다마처럼 모시는 것』
8. 리즈 무어, 『숲의 신』
9. 찬호께이, 『고독한 용의자』
10. S. A. 코스비, 『죄를 지은 모두 피를 흘리리』

1.

1위는 진작부터 점찍어두었고, 그게 한 해 동안 바뀌지 않았다. 소시민 시리즈 첫 작품인 『봄철 한정 딸기 타르트 사건』을 처음 읽었을 때는 고전부 시리즈의 ‘자기복제’라는 인상이 제법 있었다. 하지만 시리즈가 이어질수록 왜 요네자와가 고전부를 완결하지 않고 ‘비슷한’ 시리즈를 내놓았는가에 대해 납득하게 되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온 『겨울철 한정 봉봉 쇼콜라 사건』 은 그야말로 ‘대단원의 막’인 작품이다. 앞의 시리즈를 전부 아우르며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솜씨는, 기대한 결말을 훌쩍 넘어서는, 그래서 시리즈를 처음부터 다시 읽게 만드는, 그렇게 시리즈 전체에 대한 감동을 배가시킨다.

이 양반이 놀라운 것은 하나의 스타일이 아니라 미스터리의 다양한 서브 장르에 계속해서 도전을 하면서도 완성도는 점점 높아진다는 사실. 올라운더 작가인데도 해당 서브 장르(본격이든 학원물이든 특수설정이든 시대물이든 사회파든)의 톱 레벨급 작품을 내놓고 있다. 마음에 더 끌리는 점은 그런 다양한 스타일의 작품의 근간에는 모두 클래식 미스터리(‘본격 추리’라고 해도 좋겠지만 ‘본격’이라는 말에는 일본 미스터리 한정이라는 뉘앙스가 강해서)가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것이다. 글쎄, 현 시점에서 요네자와 호노부는 일본 미스터리가 도달할 수 있는 정점에 서 있는 작가가 아닐까 싶다. 저기, 정말 궁금한데 신작으로 호러 미스터리 하나 부탁해도 좋을까요, 선생님?

(그나저나 한국어판 표지에서 한 가지 궁금한 건요, 다리를 다친 건 여우 아닌가요? 왜 늑대가 목발을……?)

2.

전작이라고 할 수 있는 『백조와 박쥐』를 그다지 재미있게 읽지 않았기 때문에 뜬금없이 새로운 시리즈를 가동한다고 해서 갸우뚱했다. 이런 전차로 읽을까 말까 살짝 고민한 작품이 『가공범』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어떤 걸 읽어도 망하지는 않을 작가이지만 작품은 개성은 예전보다 흐려졌다고 생각했다. 다작에서 나오는 평균치의 퀄리티만 봐도 대단하다 싶지만 작품 전부를 읽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은 지 오래다. 실제로 작년의 베스트셀러 『당신이 누군가를 죽였다』도 재미는 있었지만 so-so,라는 감상이었으니까.

하여, 『가공범』은 반쯤 의무감으로 읽었는데 다 읽고 나서 작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 자식, 여기까지 올라온 베스트셀러 작가의 저력을 무시하지 마라.’ 히가시노 게이고식 이런 ‘드라이함’이라니. 요네자와 호노부의 『가연물』도 생각이 나면서 시리즈가 어서 이어지길 바라는 작품이 하나 늘었다. 네, 내년에도 이런 작품 기대합니다, 선생님.

3.

막판에 출간되어 내년으로 넘길까 하다가 생각보다 얇은 분량에 후딱 읽고 뒤통수를 한 대 맞았다. 마야 유타카는 미스터리 팬 사이에서도 마니악한 부류라, 팬들의 입에 종종 오르내리던 『신 게임』 또한 장르적 의미에 방점을 둔 작품이라 생각하고 대중적 재미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 생각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작가가 마련한 해답을 추리하는 데 크게 공을 들이지 않는 (게으른) 독자인 나로서도 작품을 읽는 동안의 재미가 아니라 읽고 나서 사건의 진상을 여러모로 조합하는 재미의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에서 오는 여러 가지 진상의 파편을 다른 사람과 맞춰보는 재미를 꽤 독서 후에도 지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마지막 승차한 랭킹 순위를 여기까지 올려놓았다. 이거 속편을 기대 안 할 수 없지.

4.

고전은 언제 읽어도 의미가 퇴색해지지 않기에 고전이지만 당시의 ‘현재’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시대적 낡음을 피해가기 어렵기도 하고 장르의 ‘테크닉’ 또한 덜 세련되어 보이기 쉽다. 그래서 옛날 작품을 읽을 때는 어느 정도 감안하는 편. 『용신 연못의 작은 시체』 또한 스토리 면에서는 ‘아, 옛날 작품이네’ 싶었고 중반부까지는 사건보다는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터라 ‘이야기는 재밌게 쓰는 양반이네’ 생각하며 미스터리로서는 기대는 접을 즈음…… “응, 나야 미스터리”라고 들이대기 시작하더니 후반부 내내 전반부의 ‘그저 이야기’를 죄다 복선으로 만들어버리는 호쾌함이라니. 아아, 일본에서는 가지 다쓰오가 시리즈로 복간되고 있다면서요. 어서 전부 가져와주시죠.

5.

최근 영미 미스터리 가운데 제일 주목하고 있는 작가라면 M. W. 크레이븐이다. 그만큼 후속작을 기다리고 있는데, 이제야 신작이 나왔다. 『블랙 서머』는 『퍼핏 쇼』에 이은 워싱턴 포 시리즈 2작. 최근 몇 년간 영미 미스터리 스릴러가 국내에 힘을 못 쓰는 이유 가운데 하나를 매우 일반화+단순화하자면, 캐릭터가 선명하고 곧바로 사건에 돌입하는 일본 미스터리에 익숙해진 독자들에게 영미 소설은 ‘본론으로 들어가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린다’가 아닐까 싶다. 또는 사건과 진상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데 익숙해진 터라 인물과 사건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공을 들이는 소설에는 지루함을 느끼게 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영미 미스터리도 그간 많은 변화가 생겼지만 흐름이란 건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게 아니니까.

조금 거칠게 말하면 작년에 『퍼핏 쇼』를 읽고 난 뒤의 느낌은 어라, 일본 미스터리의 템포랑 꽤 비슷하네,였다. 뒤를 졸졸 좇으며 독서하고 싶을 만큼 선명도 높은 캐릭터와 더불어 진상으로 이끄는 긴장감 때문에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아마 이 작품은 시리즈 뒤로 갈수록 더 재밌어질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첫 작품이 너무 주목을 못 받아서 후속작 안 나올까봐 살짝 긴장했다. 한데 3작까지 예정작 목록에 있는 걸 보니 안심. 아무튼 올해 영미소설 가운데 가장 오락적인 재미가 있었던 건 『블랙 서머』였다.

6.

올해 『신 게임』과는 다르게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작품이 있었으니, 다켄의 『누가 용사를 죽였는가』다. 겉모습은 누가 뭐랄 것 없는 라이트노벨 판타지. 그것도 용사가 마왕을 물리치는 왕도물이다. 미스터리 팬이든 아니든 이미 이 시점에서 이런 작품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할 텐데(서점에서 라이트노벨은 장르소설 카테고리에 없으므로), 실제로 나도 이 작품을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쩌다 본 ‘누가 용사를 죽였는가’라는 제목 하나에서 미스터리 팬으로서의 흥미가 동했을 뿐인데 이게 적중했다. 제목 그대로 마왕을 죽이러 떠난 용사가 자신의 의무를 완수하고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그 경위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작품은 화자가 용사와 함께 떠난 파티원들을 인터뷰하며 용사의 죽음을 탐색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누가 용사를 죽였는가』는 생각보다 꽤 미스터리 장르의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시점에 따라 바뀌는 진상, 그리고 진상 뒤의 다중 해결, 서술 트릭을 활용한 속임수, 검과 마법의 세계에서 가능한 특수설정 장치까지. 그렇게 하여 얻게 되는 진상들은 공감성 수치를 자극하지만 뭐, 감당할 만하다. 라이트노벨을 읽어낼 만한 미스터리 독자와 이 작품에 쓰인 장치들을 가지고 수다를 떨면 더 재밌겠다 싶다. 후속작 『누가 용사를 죽였는가 - 예언의 장』이 최근 출간되었는데 왠지 살짝 겁이 나서(?) 아직 독서 대기 중.

7.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던 도조 겐야 시리즈 재발진. 『하에다마처럼 모시는 것』은 시리즈 초반에 주었던 강렬함은 사라졌지만 그것으로 작품의 재미가 흐릿해지지는 않고 있다. 이 작가 이 정도면 민속학자라고 해도 되지 않나 싶은데, 그게 소설, 미스터리의 재미를 떨어뜨리지 않을 만큼 소재와 스토리의 결합력이 좋다는 것이 핵심. 요시무라 아키라의 『파선』과 소재가 꼭 닮아 비교하여 읽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해가 가버렸다. 그대여, 도조 겐야를 지금 알게 되었다면 지금이다.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이 첫 권이지만 『잘린 머리처럼 불길한 것』부터 시작해도 좋다. 단, 적어도 초반부는 시간을 길게 두고 집중해서 읽을 것.

8.

이런 것이 필력인가. 트라우마가 되어버린 과거의 실종 사건이 일어난 그곳에서 다시 한번 가족의 상처를 들쑤실 실종 사건이 벌어진다. 초반에 흥미를 끄는 사건 전개와는 달리 너무 많은 등장인물과 잦은 시점 변화가 이야기의 맥락을 끊는 감이 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책의 두꺼운 두께를 뚫고 결말로 치닫게 만드는 동력이 대단하다. 뭘 이렇게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인물 한 명 한 명의 서사를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데 그 인물들이 각자의 운명과 미래를 품고 있다.

전반부의 많은 잔가지들이 후반부로 가며 굵은 가지가 점점 드러나고 그에 따라 밝혀지는 내밀한 각자의 사정과 진상은 사건 해결 너머에 있는 무언가에 다다른다. 그게 또 뭉클하기도 하고 벅차기도 하고 그렇다. 누구를 따라 읽어야 하나 싶을 만큼 가지가 많아 보이지만, 그렇기에 전체적인 관계를 머릿속에 담아둔 채 내가 눈여겨보고 싶은 인물에 초점을 맞추고 찬찬히 재독하고 싶은 작품이 『숲의 신』이다.

9.

찬호께이는 영원히 『13.67』의 굴레에서 못 벗어날 것 같은데(웃음), 『고독한 용의자』 또한 『13.67』의 발에 걸려 국내에서는 좋은 평가를 못 받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두 작품은 방향성이 아예 다르고, 재미를 주는 지점도 다르기에 하나를 기준으로 두고 다른 하나를 평가하기보다 취향의 다름으로 얘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나는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은 줏대 없는 독자라 이 신작이 꽤 좋았다. 『13.67』 이후로 작가로서 이런저런 실험을 해보는 작품들 가운데는 크게 인상에 남는 것이 없어서 이 작품은 어떨까 의심도 했지만, 이 양반, 은근 본격류네……. 홍콩이라는 공간이 갖는 특수성을 보는 재미, 다양한 범죄 사건과 미스터리 작품의 장치를 활용하는 것을 보는 재미를 포함하여 예측 가능하지만 즐거운 진상을 끌어내는 솜씨가 즐거웠다.

10.

시작은 자극적인 교내 살인으로 시작하지만 버지니아 주의 카론 카운티에서 범죄의 해결은 단순히 범인을 잡는 것만이 아니다. 학생의 교사 살해는 곧바로 흑인의 백인 살해라는 인식으로 이어지고, 이것은 곧장 카운티 최초의 흑인 보안관이면서 카운티 외부인이기도 한 타이터스에게 매우 위험한 줄타기를 요구한다. 어느 한쪽으로 기울었다 반대편으로 기울기를 여러 번, 그러면서 사건을 덮고 있는 천막을 하나씩 걷어나가는 동안 척추는 긴장되고 폐가 압박을 받는다.

『죄를 지은 모두 피를 흘리리』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매우 미국적인 작품이다. 남부 누아르는 미국 남부를 배경으로 그 지역이 갖는 특수성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종종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을 주요 소재로 하는 범죄를 소재로 지방색이 강한 작풍이 특징. 이 작품 또한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어째서 이 작품이 미국 내 랭킹을 석권했는가를 알 수 있다. 반면 그렇기에 일정 정도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뛰어난 작품이 그렇듯 작품이 보여주는 특수성이 종국에는 모종의 보편성을 획득하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읽는 것만으로 몸이 눌리는 느낌을 받을 만큼 밀도가 높아 완독 후의 쾌감(사우나실에서 죽을 것 같다가 겨우 시간을 채우고 바깥으로 도망쳐 나온 느낌에 가깝지만) 또한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