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중학 시절 독서사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가끔 ‘바쇼’와 같은 책이 나타난다. 그냥 “되게 재밌다”가 아니라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 그때까지 갖고 있던 사고의 틀을 재구성하게 만드는 작품, 독서의 허브 역할을 하는 책.

내 중학 시절 독서사에는 두 사람이 있었다.

내가 처음 읽은 ‘어른용’ 책은 정비석의 『손자병법』이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주로 어린이용 전집류에서 책을 골라 읽거나 <소년중앙>, <어깨동무> 같은 잡지를 읽는 것이 전부였는데,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독서의 범위를 넓히게 된 것이다. 말은 그럴싸하게 하고 있지만 사실 초등학교 때까지는 어머니가(가끔은 아버지가) 골라주는 책을 읽거나 전에 읽은 책이 속한 전집에서 다른 책을 골라 읽고 있다가, 중학교 올라간다니까 단골 동네 서점 형이 추천해줘서 읽게 되었을 뿐이긴 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가 골라서 사다 주었다고 생각하고 있던 책들도 거의 이 서점 형이 골라준 것이었지만.)

이때까지는 내가 스스로 책을 골라 읽을 힘도 없었고 그러려고 하지도 않았다. 사실 그때까지는 서점에도 거의 어머니가 가셨지 직접 서점에 가는 법도 없었다. (그렇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의 나는 한국의 못된 장남의 대표격이었다.) 그렇게 읽게 된 이 『손자병법』은 꽤 재밌었다. 다른 비슷한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서점 형에게 『초한지』(역시 정비석의)를 추천받아 읽었다. 또 다른 책도 추천받았다. 서점을 자주 들락거렸다. 그렇게 적극적인 독서를 시작했다.

내 독서사(讀書史)에 중요한 인물이 두 명 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이 단골 서점의 형이다.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던 ‘전농서적’은 중고등학교 시절 내내 내 독서 아지트나 마찬가지였다. ‘어머니가 사다 주는’ 책에서 벗어나 재밌는 책을 알아서 골라 읽기 시작한 뒤로 서점 형은 독서 멘토나 다름없었다. 사실 그때는 단순히 서점 형이니까 책을 추천을 해주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지만 이제 와 추천받은 책들을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무리 서점에서 일한다고 해도 범상치 않은(?) 취향을 가진 양반이었던 것 같다.

『손자병법』이야 당시에 잘나가는 책이었으니 유별날 건 없지만 아서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라든지 해문의 크리스티 전집, 마인드콘트롤 입문, 내가 과학에 관심을 갖게 된 뒤에는 물리학 입문, ‘민족 소설’ 『다물』 등등 분야를 막론하고 무차별하게 보일 반큼 다양한 책들을 추천받았다. 가끔은 너무 지루하거나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되는 책도 있었지만 대개의 경우 희한하게도 재밌어서 독서의 범위를 넓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준 양반이다.

그러다 한번은 겨울 방학에 읽기 위해 전 세계의 미스터리를 모은 논픽션 열 권짜리 전집을 소개받았다. UFO, 뱀파이어, 귀신 들린 장소 등 전설과 사실 사이에 있는 각종 이슈를 근거 자료와 함께 모아놓은 책인데 재미는 있었지만 대부분 으스스한 이야기인지라 너무 무서워서 한 권만 읽고 다시 서점 형에게 들고 갔다. 그 책 대신 소개받은 책이 『영웅문』이다.

표지를 보아하니 아마 『손자병법』이나 『초한지』를 좋아하니까 추천해준 역사소설이겠거니 하고 받아와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걸, 역사소설은 맞는 것 같은데 뭔가 이상하다. 초반부터 창과 검을 들고 싸우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여느 역사소설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나는 이 책으로 무협소설이라는 장르를 처음 만난 것이다. 내공이 어떻고, 혈맥이 어떻고, 단전 호흡이 어떻고……. 알 듯 말 듯한 용어들과 다채로운 인물들의 액션에 넋을 빼고 말았다. 단순히 싸우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 좋은 편이 나쁜 놈들을 해치우는 간단한 이야기도 하니다. 수백 가지의 사연을 가진 수백 명의 인물들이 하나의 장대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무지갯빛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기한 것은, 그렇게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누구 하나 헷갈리는 사람이 없고, 누구 하나 개성 없는 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나는 재밌게 읽은 책의 결말도 일주일이면 까먹고 마는 족속인지라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머릿속에 책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게 너무 신기했다. 나중에는 좋아하는 대사나 장면을 줄줄 읊을 지경이 되었다.

이제까지 개인 독서사를 통틀어도 이런 책은 드물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도 몇몇 장면이 선명하게 스쳐지나간다. 처음 강남칠괴를 만나는 장면, 구지신개에게 강룡십팔장과 타구봉법을 배우는 장면, 서로 다른 마음으로 바위에 깔린 구양공자를 살리고 무인도를 빠져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장면, 황용이 마음을 드러내며 곽정이 저잣거리에 사준 사탕 이야기를 하는 장면. 어느 부분을 떠올려도 생생하게 재구성되지 않는 장면이 없다.

특히, 무공을 연마하는 과정이나 겨루는 모습들은 친구와 함께 노트까지 준비해서 기록을 했던 기억이 난다. 강룡십팔장 중 곽정이 가장 자주 쓰는 항룡유회는 “왼쪽 무릎을 구부리고 오른손으로 크게 원을 그리면서 장심을 내뻗는”다. 구양공자와 싸우는 와중에 배운 신룡패미는 “손을 등뒤로 뻗어 내리치듯 공격하는” 초식이다. 이런 걸 아직 기억한다. 당시에는 그리지도 못하는 그림까지(졸라맨처럼) 넣어가며 정리해서 친구들과 연마(?)하고 ‘복도제일무술대회’를 열기도 했다. 심지어 『우슈』, 『장권』, 『남권』, 『당랑권』 등 책을 하나둘 모아 방안에서 나 혼자 무술 수련을 하기도. (이때부터 나는 모든 걸 책으로 배우는 안 좋은 버릇을 들였다. 그럴 바에야 동네에 있던 우슈 도장이라도 다녔다면 살이라도 안 쪘지!)

아무튼, 그렇게 이틀 동안 여섯 권의 책을 전부 읽었다. 그리고 다시 서점으로 달려가 2부를 달라고 했다. 그렇게 연이어 ‘영웅문’ 3부작 열여덟 권을 내처 읽었다. 그리고 김용의 다른 작품을 찾아 또 달려들었다. 처음으로 전작 읽기를 한 작가다. 이때 『영웅문』을 추천받지 않았으면 내 무협소설 탐닉의 시기는 꽤나 늦거나 전혀 다른 종류가 되었을 것 같다. 내게 『영웅문』은 역사소설과 무협소설의 중간 어느메쯤 있는 새로운 소설이었다. 김용의 작품들이 대부분 그러했는데, 그것들을 읽고 나서야 무협이라는 장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 가운데 「바쇼 한 명의 문제」라는 단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일본 정형시 하이쿠의 전신인 하이카이는 원래 서민들의 심심풀이 정도였는데 마쓰오 바쇼라는 천재가 등장하면서 예술로 승화되었다, 탐정소설에서도 이러한 천재성이 두드러진 작가가 나타나면 탐정소설 또한 예술로 평가받는 날이 올 것이다,라는 이야기다. 란포는 탐정소설계를 통틀어 바쇼 같은 작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지만, 책을 읽을 때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가끔 ‘바쇼’와 같은 책이 나타난다. ‘바쇼’와 같은 책이 필요하다. 그냥 “되게 재밌다”가 아니라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 그때까지 갖고 있던 사고의 틀을 재구성하게 만드는 작품, 독서의 허브 역할을 하는 책. 『영웅문』이 아니었다면 나의 독서력은 꽤나 다른 형태가 되었으리라. 나에게는 『영웅문』이 처음 만난 ‘바쇼’ 같은 책이다.

내 독서사에 중요한 인물이 두 사람 있다고 했는데, 다른 한 사람이 여기에 등장한다.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로, 나보다 독서량도 많고 폭도 넓은 녀석이었다. 지식이나 공부 때문이 아니라 ‘즐거움’이라는 방면으로. 내가 한창 『영웅문』에 빠져 있을 무렵 이 친구는 다른 종류의 무협을 이미 섭렵하는 중이었다. 김용의 다른 작품들을 소개해준 것도 이 친구. 서점 형이 폭 넓은 독서로 나를 이끌었다면 이 친구는 나에게 ‘장르’라는 것을 인식시키고 장르의 ‘갈래’를 보여주었다. 나에게 무협소설/무협지란 어두운 만화방에 다른 만화책들과 함께 꽂혀 있는, 읽어서는 안 되는 불량식품 같은 책이었다. 그런데 서점 형이 추천한 『영웅문』으로 나도 모르게 무협소설의 세계로 빠지고, 친구에게 세계의 여러 다른 길을 안내받은 것이다. 나는 그 뒤로 흔히 ‘삼류’ 무협이라는 것부터 퓨전 무협까지 각양각색의 무협을 즐기게 되었다. 그리고 각각의 길은 길 나름의 풍경과 재미와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어떤 길이든 올라타서 즐기는 방법을 터득하게 된 것 같다.

독서는 흔히 내적인 경험을 쌓는 행위, 그렇기에 혼자 하기 좋은 행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그리고 나도 어느 순간까지 그렇게 생각했었지만) 적어도 장르소설의 경우에는 자신의 경험을 타인과 나눌수록 즐거움은 배가한다. 『영웅문』을 혼자 읽었더라면 단순히 ‘정말 재밌는 책’ 가운데 하나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마침 옆에 이 친구가 있었다. 같은 책을 몇 번씩 읽고 넘치는 흥을 주고받을 상대가 있었다. 게다가 『영웅문』은 생각과 감상을 나눌 이야기며 인물이 무궁무진했다. 이야기를 나누며 장면장면을 다시 한번 곱씹고, 거기에 나를 대입하고, 친구를 대입하고, 내가 읽지 못한 행간을 알아차리고, 친구가 발견하지 못했던 재미를 전달하고……. 얘기를 하면 할수록 책이 더 재밌어졌다. 재밌는 책들이 늘어났다.

서점 형이 추천해주지 않았다면 『영웅문』을 읽게 된 것은 아주 훗날이 되었거나 읽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르고, 친구가 아니었다면 무협의 다채로운 색깔들을 맛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영웅문』이 아니었다면 내 장르 독서력은 지금보다 훨씬 시야가 좁은 풍경밖에 볼 수 없는 길 위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독서 전성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내 전성기는 중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시절, 『영웅문』과 서점 형과 ‘그’ 친구를 만난 순간부터. 그 뒤로 나는 이런 ‘바쇼 같은’ 책을 많이 만났다.

밴 다인의 『벤슨 살인 사건』도 그렇고,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도 그렇고, 캠벨의 『신화의 힘』도 그런 책이다. 우연히 만날 때도 있었지만 부러 찾아다니기도 했다. 분야와 내용에 상관없이 이런 책들은 내 안의 무언가를 ‘끝내주’었고, 그것을 통해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되었다. 『영웅문』은 그 길로 통하는 첫 번째 ‘끝내주는’ 책인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어쩌면 더더욱, ‘끝내주게’ 재밌다.

♣︎ 알라딘 16주년 기획 소책자 『끝내주는 책』(2015)에 실은 원고를 다듬어 올린다.

덧) 참고를 위해 각각의 작품에 해당하는, (가능한 한) 현재 판매하는 타이틀 링크를 걸었다. 당연하게도, 이들은 그때 내가 읽은 판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