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일기 2026년 10월 3주 (10/12 ~ 10/19)

이번 주 독서 모임에서 최근 국내 장르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경계소설’이란 말이 나왔다. 요즘은 경계소설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기보다는 장르소설의 테두리가 흐릿해지는 것 같다.

독서 일기 2026년 10월 3주 (10/12 ~ 10/19)

이번 주 독서 모임에서 최근 국내 장르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경계소설’이란 말이 나왔다. 요즘은 경계소설이란 말을 쓰지 않는다…기보다는 장르소설의 테두리가 흐릿해지는 것 같다. 언젠가 길게 얘기하고 싶은 주제이긴 한데, 최근 국내 장르소설이라고 불리는 작품들은 장르적 성격이 강한 순문학, 또는 순문학에 접근하려고 하는 장르물(이 둘은 또 다르지만)에 가까운 것 같다. 좋은 의미로는 순문학과 장르문학에 경계가 어디 있느냐,고 되물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경계소설이라는 말이 떠돌던 시기(아마도 2000년 근방)에는 나도 둘을 가로지르는 경계의 무의미함을 떠들고 다녔다.

하지만 최근에는 조금 생각이 달라졌다. 순문학의 경계는 내가 모르겠지만, 장르문학 쪽에서의 경계는 좀 더 분명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장르의 정체성을 온전히 지키려면 말이다. ‘장르문학’이라고 퉁치고 있지만 미스터리, 판타지, SF, 호러라는 개별 장르를 가리킨다고 생각하는 게 좋겠다. 이런 생각을 왜 하게 됐느냐면, 특정 장르의 코드(또는 관습)을 무시한 채 그 장르적 성격을 끌어다 썼다며 장르소설의 외양을 강조하는, 즉 대중성을 강조하는 작품들이 너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출판사(때로는 작가) 입장에서 독자들에게 말하고 싶은 건 그런 거다. “이 작품은 장르소설처럼 재밌지만 (장르소설과는 다르게) 훌륭한 문학성과 멋진 의미를 담고 있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매우 거칠게 요약하자면 말이다. 이런 접근이 틀렸다거나 비판을 하자는 말은 전혀 아니다. 장르 독자/편집자 입장에서는 심통이 나긴 하지만. 실제로 최근 ‘국내 장르소설 시장’에서 이 방향은 잘 들어맞고 있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인지, 최근의 국내 장르소설 가운데는 미스터리도 스릴러도 판타지도 SF도 호러도 아니지만 각각의 장르가 갖고 있는 분위기나 성격이 녹아 있는 작품이 굉장히 많다. 종종 복수의 장르 요소가 섞여 있기도 하고(혼합 장르와는 다르다). 일반 독자의 사랑을 받지만 기묘하게도 해당 장르 시장에서는 벗어나 있는. 이를테면 대표적으로 조예은 작가는 매우 인기 높은 장르 작가이지만 장르 독자들에게도 주목도가 높은 작가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이다. 이 (다시 한번) 기묘한 현상을, 나는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

왜 여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느냐면, 내 독자로서의 정체성은 장르물에 속해 있는데 몇 번을 시도해도 조예은을 재밌게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작가의 필력이라든지 작품의 퀄리티 문제가 아니다. 장르소설 작가로 국내 톱을 찍는 작가인데도 장르소설로 재밌게 읽지 못하고 있는 나 자신이 혼란했던 것이다. 순문학 작가 방면에서는 강화길이 그런 경우다. 종종 여성 고딕, 셜리 잭슨과 비교되고 서스펜스나 스릴러를 호출하여 장르적 친연성을 강조하는 문구가 쫓아다니는 작가다. 나는 초기에 가정 스릴러로서의 강화길의 작품에 흥미를 가졌는데 고백하자면 몇 번의 고배를 마셨다. 셜리 잭슨의 작품은 받아들이기 쉬웠는데 강화길은 미묘하게 답답했다. 어쩌면 순문학적 특징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이 독서의 차이를 좀 더 세부적으로 파고 들고 싶었다. 그래서 미뤄왔던 강화길의 작품들을 차근차근 읽어볼까 싶어 『괜찮은 사람』과 『화이트 호스』를 다시 꺼냈다. (조예은의 경우에는 작가의 방향성을 어느 정도 알 것 같아 개인적으로는 일단락. 다만, 작가 자신의 말마따나 비평가들의 독서가 더 필요하다. 국내 장르 작가의 책은 하염없이 늘고 있는데 비평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번 주까지 연이어 읽은 오야마 세이이치로는 『죽음의 인연』을 읽고 결론을 지었다. 원래 『붉은 박물관』부터 다시 정주행하려는 생각이었지만 첫 두세 편을 다시 읽는 와중에 깨달았다. 아, 오야마 세이이치로는 변하지 않았구나.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출판사로부터이긴 하지만) 최신작을 읽고 판단하면 될 것 같아 단편 둘을 읽고 깨달았다. 역시 난 ‘퍼즐’만 있는 작품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오야마 세이이치로의 장점은 익숙한 트릭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서 변주를 지속적으로 해낸다는 점일 텐데, 오로지 트릭의 설계에 초점을 두고 스토리의 플롯은 그 설계에 걸치는 구조를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게 재밌어지려면 캐릭터에 정을 들여야 하지만 붉은 박물관 시리즈의 경우 캐릭터의 발전이랄까, 주인공 캐릭터를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거나 싫어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는다. 이런 결론을 내리기까지 결국 국내 번역 전작을 읽었으니 난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지, 암. 아무튼 이 작가의 신작은 특별한 이유가 생기지 않는 한 집어 들 일은 없겠다.

이번 주부터 병렬 독서 책을 줄이는 중이다. 읽다가 오래 미뤄두고 있던 미야케 가호의 『책 읽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뒀습니다』를 다시 들었다. 미야케 가호는 독서 방식이랄까, 비평의 방향성이 마음에 들어 눈여겨보고 있는 작가인데, 책의 중반부가 일본 독서 시장 사례 중심이기 때문에 흥미가 있긴 하지만 거리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 몰입도는 떨어지는 편. 그럼에도 중간중간 생각할 만한 부분이 있었고, 후반부로 넘어가면서 내가 평소 생각하던 것을 명쾌하게 해석하고 정리한 부분들이 좋았다. 제목은 약간 어그로성 같지만 실제로 노동의 시대적 변화와 그에 따른 독서의 변화를 다루고 있다. 제목만 보고 짐작하는 바와는 다른(좋은 의미로) 종류의 책.

지난주까지 꼬리 물기 독서 대상이 루프물이었다면 이번 주는 킹의 『캐리』를 시작으로 초능력물, 소외자로서의 초능력자물을 연이어 보고 있다. 킹 원작을 읽은 후 플래너건의 <캐리>를 보기 시작했는데 사실 단순한 스토리 라인을 가진 작품을 8화까지 어떻게 늘려놓으려고 싶은 마음 때문에 우려가 많았던 것이 사실. 이미 설정과 스토리를 다 알고 있음에야. 그런데 꽤 몰입도 높다. 1화는 꽤 원작에 충실하고 디테일을 잘 살린 데다 각각의 캐릭터를 어떻게 살렸는지에 집중해서 보았다면 2화부터는 ‘엑스맨’ 설정을 드러낸다. 원작과 이전 영화들은 따돌림과 원리주의 신앙에 강하게 노출된 소녀와 오컬트를 결합한 데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데, 마지막에 가서야 이런 아이는 캐리 혼자가 아니라는 암시를 주고 끝난다. 하지만 드라마는 초반부터 슬그머니 그것을 드러내고 있고, 그게 극의 흥미를 이끄는 미끼가 됨.

제일 걱정한 것은 ‘따돌림’ 자체에만 너무 초점을 맞추지 않을까, 어머니를 그걸 8화나 견디고 싶지는 않은데,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플래너건은 캐릭터를 더 깊게 해석해서 한 명 한 명 그들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는 것으로 이야기를 확장한다. 어머니는 극단적인 광신자가 아니라 좀 더 이해 가능한 인물이고, 크리스도 그냥 캐리를 괴롭히기만 하는 못된 아이가 아니다. 그래서 이야기와 캐릭터의 기본 골격은 같지만 세부 사항은 제법 달라져 있고 그게 마음에 든다.

특히 캐리를 ‘책을 좋아하는 아이’로 만든 게 좋다. 다른 게 아니라 자신이 읽은 책을 통해서 다른 사람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일반적인 아이. 2화에서 좋았던 장면은 상담 교사가 캐리에게 도서관을 소개해주며 “학교는 다른 애들이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부분. 곧바로 캐리가 꺼내온 책들이 전부 미국도서관협회에서 선정하는 퇴출 요구가 많은 책 목록에 속한 작품이라는 게 재밌다. 물론 『캐리』 자체도 그 목록(드라마 장면에 등장한 책이 아니라 실제 퇴출 요구를 많이 받은 작품 목록)에 있었다는 사실은 플래너건의 유머인가 싶기도 하고. ㅎㅎ

3화 오프닝은 마치 <링>을 떠올린다. 그러고 보면 <링>은 전염되는 저주 호러물의 근본으로만 여겨지지만 실제로 사다코는 캐리와 비슷한 처지였지. 초능력을 갖고 있기에 잠시 주목받았지만 곧바로 사회에 의해 버려진, ‘능력을 가진 여자’에 대한 사회의 부정(否定). 그리고 이건 또 엑스맨의 초기 주제로 이어지고. 엑스맨 시리즈를 처음 볼 때도 사회가 초능력자들을 대하는 방식이 ‘통제’와 ‘치료’였다는 점, 당사자들(돌연변이) 사이에서 일어나는 ‘통제’와 ‘치료’의 수용과 거부의 혼란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 좋았다. 『캐리』와 『링』과 엑스맨 시리즈는 각각 서로 다른 형태를 갖고 있지만 어렴풋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맥락에서 옛날 작품 <크로니클>이 떠올라 재시청했다. 그때도 좋았는데 지금 봐도 좋다. <크로니클>은 우연한 계기로 초능력을 얻은 세 명의 10대가 점점 능력을 키워나가며 벌어지는 일과 파멸에 이르는 과정을 파운드 푸티지 형식으로 그린, 생각보다 다크한 액션물.

읽은 책

  • 오야마 세이이치로, 『죽음의 인연』
  • 강화길, 『괜찮은 사람』
  • 미야케 가호, 『책 읽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뒀습니다』

책장에서 꺼낸 책

  • 셜리 잭슨, 『힐 하우스의 유령』
  • 강화길, 『화이트 호스』
  • 콜린 윌슨, 『베러티』
  • 고종석, 『제망매』
  • 박상륭, 『열명길』
  • 미르치아 엘리아데, 『영원회귀의 신화』

구입한 책

  • 니시무라 교타로, 『7인의 증인』
  • 미쓰다 신조, 『미미소기』
  • 조예은, 『녹색 절벽의 신자들』
  • 앤 클리브스, 『까마귀 덫』
  • 가미조 가즈키, 『폴터가이스트의 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