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올해의 미스터리 - 영상편
올해의 미스터리, 책에 이은 영상편. 기준은 책과 마찬가지!
올해의 미스터리 소설 작품에 이은 영상편. 기준은 책과 마찬가지.
- <파라다이스 (시즌 1)>
- <사건 수사대 Q (시즌 1)>
- <더 라스트 오브 어스 (시즌 1,2)>
- <데스 밸리 (시즌 1)>
- <신성한 나무의 씨앗>
- <슬로 호시스 (시즌 5)>
-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버렸다>
- <보슈 - 레거시 (시즌 3)>
- <소년의 시간>
- <하이퍼나이프>
1.
이 드라마가 많이 회자되지 않은 게 너무 아쉽다. 아, 이거 <파라다이스>에 대해 뭐라도 얘기하면 바로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조심스러운데, 일단 대통령 살해를 둘러싼 미스터리물이라는 것과 매우 넓은 의미의 클로즈드 서클에 포함시킬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정도만 말해둔다. 적어도 1화를 전부 보기 전까지는 아무 정보 없이 살펴보기를 권한다. 내 경우는 1화를 보는 와중에는 그럭저럭 재밌을 것 같다는 감상이었지만 마지막을 보고 완전히 취향 저격당함. 올해 읽은 소설 가운데 구간편 베스트 10에 포함된 작품과 연결지어 더 재밌어졌다. 관련작도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이 정도로…….
2.
유시 아들레르올센의 원작 특별 수사반 Q 시리즈를 바탕으로 한 <사건 수사대 Q (시즌 1)>를 이렇게 재밌게 볼 줄 몰랐다. 능력은 누구나 인정하지만 과거의 사건 이후로 모두에게 거리를 두며 문제를 일으키기만 하는 캐릭터가 ‘어중이떠중이’를 모아 미해결 사건 팀을 만든다,는 설정은 언뜻 <슬로 호시스>를 떠올리기도 한다. 실제로 보면서 드는 느낌은 사뭇 다르지만 둘 다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드라마라는 것은 분명하다. 책을 읽을 때 머릿속에 그렸던 것보다 캐릭터들이 훨씬 더 반짝거려서 드라마를 보고 난 뒤에 원작을 다시 꺼내 읽으니 흐릿한 그림자의 캐릭터에 색채가 뚜렷해진 느낌이 들었다. 이 드라마를 내가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네.
3.
<더 라스트 오브 어스>는 스토리에 흠뻑 빠져 엔딩 후에도 여운이 길게 남았던 게임인데, 2편에 대한 혹평이 많아 어떡할까 고민하다 드라마가 국내에 공개되면서 플레이를 하고 드라마를 연이어 보았다. 2편이 어떤 면에서 게이머를 자극했는지는 알 것 같은데 다행인지 캐릭터에 몰두할 수 있었고, 결말도 납득할 만했다. 올해 시즌 2까지 공개된 드라마는 게임을 하며 느꼈던 감정들을 다시 불러일으킬 만큼 잘 만들어졌고, 충분히 빠져들어 즐길 수 있었다. 한 가지, 시즌 2가 게임 2편을 온전히 담는 줄 알았는데요, 거기서 끊어버리면……. 흑.
4.
<데스 밸리 - 웨일스의 살인 사건>은 올해의 다크호스였다. 영국의 웨일스 지방을 무대로 한 것도 신선하고, 무엇보다 캐릭터들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나랑 유머 코드가 잘 맞아 시종일관 낄낄대면서 볼 수 있고 미스터리 구조 또한 성실한 편이라 매화 보는 맛이 남다르다. 시즌 2여, 어서 오라. 그냥 2011년 드라마 <데스 밸리>와는 다르니 주의. 언데드 전담반이 나온다니 그건 그것대로 궁금하긴 한데 어차피 볼 수는 없고.
5.
나도 내가 이 작품을 이렇게 몰입해가며 즐겁게 볼 줄 몰랐는데, 《미스테리아 58호》에 실린 정성일의 리뷰의 공이 크다. 사실 기사를 살짝 읽다가 관심이 쏠려 영화를 먼저 본 뒤 기사를 다시 읽었다. 짧은 영화 소개와 감독의 전작이 뭔지 슬쩍 본 뒤 내 취향과는 거리가 먼 예술 영화에 가깝지 않나,라는 선입견을 가져버린 과거의 나를 매우 친다.
책이든 영화든 언제나 가능한 한 아무 정보가 없는 상태로 작품을 즐기려고 하는 편이지만, 이렇게까지 이 영화와 이 영화의 배경이 된 사실에 대해 모르는 것투성이인 상태에서 감상하게 된 것 또한 운이라면 운이겠다. 일단 내가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다 보니(문화를 비롯하여 사법체계 등에 대한) 화면에 등장하는 상황을 세세하게 이해하기 위해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몰입도가 높아진 이유라면 이유겠다. 국가 범죄가 개인의 상황과 맞물리며 각각의 사정과 입장을 가진 가족 일원들이 어떻게 행동을 하는지가 매우 스릴 넘치게 펼쳐져서 상영 시간이 꽤 긴데도 긴장을 풀 겨를 없이 몰입했다.
6.
명불허전 <슬로 호시스>. 이번 시즌에서는 제1차 리비아 내전에서 비롯된 런던 테러 사건을 소재로 한다. 근데 이 시리즈는 소재야 어쨌든 게리 올드먼만 보고 있어도 시간이 훌쩍훌쩍 지나간다. 현실에서 만난다면 이만큼 대책없고 짜증을 유발하는 상사도 없을 텐데, 그가 이끄는 팀의 일원 또한 다들 개성(이라고 쓰고 ‘문제’라고 읽는다)이 넘쳐 간수가 안 된다. 그런데 이걸 팀이라고 부를 수 있나 싶은 순간에 각자의 역할이 한 군데로 흘러 사건을 해결하고 고비도 넘기는데 이걸 계속 반복하는데도 질리지가 않아……. 제발 원작 전부(스핀오프 및 중단편 빼고 장편만 아홉 권) 소비해서 드라마 만들어주세요.
보면 볼수록 믹 헤런의 원작이 궁금해지긴 하지만 게리 올드먼의 잭슨 램이 너무 독보적이라 어떨까 싶은 생각도 든다. 믹 헤런 원작의 다른 드라마 <다운 세미터리 로드>도 공개되었는데 이것도 재미지다. 에마 톰슨이 무려 하드보일드 탐정으로 등장! 귀여운 루스 윌슨도 등장하고.
7.
그야말로 후더닛. 그야말로 ‘캐릭터로 밀어붙여’! 백악관이라는 특수한 클로즈드 서클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을 다루다 보니 용의자이자 참고인 들을 신문하는 과정이 <그렇게 사건 현장이 되어버렸다>의 주요 흐름인데 수많은 등장인물의 캐릭터가 워낙 잘 잡혀 있다 보니 그들이 그 시각 사건 현장에서 무엇을 했는가를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가 있다. 제일 꼴보기 싫은 인물이 범인이고, 동기 또한 꼴보기 싫었던 이유의 핵심에 가까워 매우 만족스럽다. (웃음) 가장 마음에 든 캐릭터는 워싱턴 DC 경찰국장 래리.
8.
<보슈 - 레거시>의 시즌 셋을 포함하여 보슈 전 시즌 대단원. 원작을 뛰어넘는다고 하면 마이클 코널리에게 실례일 테지만 적어도 타이터스 웰리버의 해리 보슈 캐릭터만큼은 원작을 완전히 체화했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다른 보슈는 이제 떠오르지 않는다. 이 바턴을 이어받아 스핀오프 드라마 <밸러드 (시즌 1)>에서 매기 큐가 밸러드를 맡았는데 역시 재밌기는 했지만 아직 캐릭터를 쌓아나갈 시간 필요한 것 같기도. 이어서 보슈의 딸내미 매디도 경관으로 자리를 잡았으니 이쪽 스핀오프도 기대해본다.
9.
<소년의 시간>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질 것 같아서 미루다가 최근에야 보았다. 다행히 4화로 짧게 마무리되었고, 우려했던 보기 힘든 장면은 거의 등장하지 않았지만 드라마를 보는 내내 계속해서 무언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드라마를 보기 전에는 소년범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본 뒤에는 교육과 양육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구나 생각했다. 어쩐지 영화 <배틀 로얄>의 마지막 장면에서 기타노 선생이 던진 질문이 떠올랐다. “이제 어른들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 (정확히는 이런 대사가 아니지만.)
10.
국내에서도 이런 드라마가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겉모습만 빌린 스릴러가 아니라 캐릭터도 제대로 살아 있고 서사 또한 뒤로 가면서 어정쩡하게 교훈이라든지 감동 같은 걸 슬금슬금 드러내는 게 아니라 끝까지 장르물로서 확실하게 중심을 지키는 드라마라는 점이 좋았다. <하이퍼나이프>를 견인하는 두 사람의 관계에 초점을 맞춰, 사이코패스인 정세옥에게 수술을 요구하는 소시오패스 최덕희 교수라는 설정도 재밌지만 그 설정을 낭비하지 않고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요소로 에피소드를 만들어내는 방식이 훌륭했다.
그 밖에, 그냥 넘기기 아쉬운 작품들을 추가하자면,
- <하얀 차를 탄 여자>
- <라스트 마일>
- <블랙 백>
-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
- <자백의 대가>

<하얀 차를 탄 여자>는 미스터리 한국 영화 부문 ‘올해의 발견’상을 수여한다. 어딘가에서 우연히 보지 않았다면 이런 영화가 있다는 자체도 몰랐을 것 같은데, 하얀 눈이 내린 날, 어떤 여자가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데리고 병원에 나타나는 순간부터 재밌기 시작. 나이 든 여자 경관이 중심이 되어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도 신선했고 다소 개연성이 어긋나긴 하지만 미스터리 구조를 꽤 구체화한 부분이 좋았다. 이런 성격의 한국 영화 보기 힘들지.
노기 유니버스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라는 것만으로(훗) 보기 시작한 <라스트 마일>은 생각보다 꽤 쫄깃한 진행을 보여준다. ‘라스트 마일’에 ‘물품이 고객에게 도착하는 마지막 구간’이라는 뜻이 있다는 걸 이제 알았네. <언내추럴>과 <MIU404>의 결합력에 기대를 많이 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지만 물류 시스템으로 이렇게 흥미진진한 스릴러를 만들다니, 난 그저 스탠드얼론 작품으로도 만족했다. 여러모로 한국의 물류 시스템을 계속해서 떠올릴 수밖에 없었고. 메시지를 잃지 않으면서 오락적 재미를 주기는 쉽지 않은데 균형 감각이 매우 좋았다. 근데 이런 건 한국에서 먼저 만들어졌어야 할 소재 같은데.
(안 봤지만) <완벽한 타인>이 떠오르는, 스파이만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벌이는 <블랙 백>의 심리전이 좋다. 거의 앉은 자리에서 이렇다 할 액션도 없이 이렇게 흘러가는 건조한(?) 쫄깃함이 주는 매력이 있지. 이런 스파이물, 나쁘지 않아.
정체불명의 미사일이 미국을 향해 발사되었다는 설정 하나만으로 이렇게나 감칠맛 넘치는 스토리를 만들다니. 다만 이런 식의 플롯은 이제 특별하지는 않고, 반복되는 상황에서 크게 진전 없는 후반부 때문에 초반의 긴장감이 막판에 떨어지는 감도 있지만 상영 시간이 짧으니까 크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다. <하우스 오브 다이너마이트>의 재미는 물론 배우들 보는 맛이지만…….
<자백의 대가>는 제목만 듣고도 재밌을 거라 생각했으나 이미 제목에서 반쯤은 설명한 설정을 질질 끌고 가는 초중반 속도감이 아쉬웠다. 캐릭터 설명이나 분위기를 잡기 위해 낭비하는 시간이 많은 것처럼 보여 초반에 하차할 위기까지 있었지만…… 그래도 전도연과 김고은 보는 재미로 버텼더니 후반부에 속도감이 오르며 무난하게 마무리. 최근 OTT 드라마를 보더라도 이렇게 단선적인 설정으로 12화까지 끄는 경우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8화 정도가 무난하지 않았을까. 무엇보다 이야기가 늘어지면 긴장감이 풀리는 터라. 미스터리로서의 쫀쫀한 구조는 중간부터 생각하지 않고 그냥 즐겁게 봤다.